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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개미가 개미했다, 김개미 동시집 <선생님도 졸지 모른다>

새책 소식

by 참도깨비 2024. 2. 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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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수프같이 부드럽고 따뜻할 뿐

오 분 정도 기다리면
여기서 팔이 하나
저기서 다리가 하나 생긴다

손가락이 돋고
발톱이 나오고 나면
마지막에 정신이 돌아오는데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그날은 종일 좀비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는
내가 나를 조립할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한다

김개미, <나의 조립> 

 

 김개미 시인의 동시집 <선생님도 졸지 모른다>에 나오는 첫 시다. 어른이 왜 동시집을 내느냐는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보면 김개미 시인을 떠올린다. 동심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왜 동시를 써야 하는지, 그저 기계적으로 아이에게 주는 사탕처럼 쓰기 쉬운데 김개미 시인은 개미라는 이름만큼 그 작은 세계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일개미이자 시개미이자 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왜 아이들조차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시를 쓰지 못하고 어른들의 동시를 흉내 내고 있는지 아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시를 써내고 있다.

 

옆에 앉은 아저씨가
드라마 본다

아, 안 된다 안 된다
며칠 전 아빠랑 같이 본 거다

아, 안 된다 안 된다
여긴 사람이 너무 많고 너무 조용하다

아, 안 된다 안 된다
우리 아빠랑 비슷한 나이 비슷한 표정

아, 안 된다 안 된다
다음 장면은 안 된다 안 된다

아저씨도 울지 모른다
아빠처럼 울어 버릴지 모른다

김개미, <안 된다 안 된다>

 

아이도 어른과 함께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임을, 유효기간이 지나거나 구간을 지나면 얼른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너희들에게는 끝없이 설탕과 소금과 채찍을 번갈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그 자체로 빛나고 웅장한 존재임을 시로써 말해주고 있다.

 

인디언처럼 멋진 이름을 지어 주고
따뜻한 태양빛과 바람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거예요
부러진 가지가 아플 거라고 말해도
꽃들과 노래를 불렀다고 말해도
비웃거나 무시하지 않을 거예요
빨간 머리 앤과 어린 왕자를 소개해 주고요
인형에게 인사하라고 하면
상냥하게 인사할 거예요
슬픈 이야기를 적은 수첩을 소중히 여겨 달라고 하면
기꺼이 그렇게 할 거고요
지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유머와 농담을 잃어버리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잘못했을 때는
아무리 어린 어린아에게라도
정중히 사과할 거예요
나는
빛나는 구름과 웅장한 물고리를 아니까요

김개미, <이다음에 아이를 낳으면>

 

이런 말을 아이가 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어른의 세계가 이러지 못하면서 아이를 낳으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김개미 시인은 자신의 입말로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아이를 안다고 제 목 소리를 무장하려고 하는 어른들에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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