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의 <진달래꽃> 있지요?"
전화를 받으니 다짜고짜 묻는 어르신.
"비가 오고 도서관에 차도 없어서 못 가니 김소월의 '진달래꽃' 좀 사진 찍어서 보내주면 안 될까요?"
시립도서관 누리집에서 검색을 해보니 보이더라며 사정 이야기를 하는데,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찾으면 전화 기다릴게요. 전화번호 떴지요?"
".......... 이 전화는 유선전화라 번호가 안 뜨는데요?"
"그러면 전화번호 적어요. 000-0000-0000"
꼼짝없이 붙들린 형국이 되어 <진달래꽃>을 찾으러 가야 할 판이다. 사진 찍어서 보내달라는 말이 저작권에 위배된다는 말을 하려다가 숨가쁘게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말에 반 더듬이가 되어 머뭇거리는 사이 '진달래꽃'은 '초혼'으로 바뀌었다.
"그 시 한 편이 필요하시면 인터넷에서 찾아보셔도 될 텐데요?"
"인터넷에는 올리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올려서 틀린 게 많잖아요. 처음 나온 책(초판본 영인본)이니 안 틀릴 거잖아요. 시낭송하는 데 쓰려고 하니 전화 기다릴게요."
이런 일은 새로 겪는 유형의 민원이다. 도서관이 이런 서비스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마음이 급하신 그분의 심정을 헤아려 '진달래꽃'을 찾는다.
그런데 어디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시집이 서가에 두 줄로 꽂혀 있어서 앞 뒤로 뒤적여보지만 비오는 날 전화만큼이나 다급하니 보이지 않는다.
적어놓은 전화로 사정 이야기를 한다.
"참으로 아쉽네요. 어디 가서 찾아야 하나......"
깜냥껏 추측하기로는 내일 있을 시낭송에는 인터넷에서 뽑은 '초혼'이 낭송될 것 같은데, 뒷맛이 끕끕하다.
곳곳에 스마트도서관까지 생겨서 키오스크로 책을 드라이브 쓰루(?)할 수 있는 때이니 도서관 사용법 같은 것이 소용 없게 된 것 같아 씁씁하다( 사실 스마트도서관으로는 작은도서관 책을 빌려볼 수 없다. 태그 작업을 따로 할 수 없어서 상호대차 신청은 끝없이 밀려오는데 부응할 수가 없어, 시립도서관에 스마트도서관에 이 사실을 안내해주면 좋겠다고 건의했으나 아직 해결이 안 되고 있다. 몇 번을 발송거절해도 주문이 들어오다가 전화가 오기도 한다. 신청했는데 왜 안 오느냐고? 그러면 여기는 작은도서관이고 사정 이야기를 하면 백 프로 이해는 못하겠다는 느낌으로 전화를 끊지만). 내가 원하는 책만 구하면 되는 일방적인 서비스만 남은 걸까? 여기밖에 없는 책이라 직접 찾아오시는 경우는 감개무량할 일이지만 뒷맛은 갸운치 않다.
꼭 읽어야 할 책을 빌려보는 데는 여러 사정이 있겠지. 그러면 도서관 사용법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도서관 운영자나 봉사자 교육만이 아니라 시립도서관부터 작은도서관까지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그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 '빠름빠름'만 있은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기다림 또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앞의 경우는 다른 일이지만 도서관이 복사까지 해주거나 서류 작성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빌려주는 것까지 해야 한다면 지나친 서비스 요구 같다는 것이다. 잠깐의 웃지 못할 일로 끝이 났지만 시립도서관 상호대차 서비스에 참여하여 좋은 책을 제공하는 작은도서관을 비롯하여 책이 돌고 도는 일에 대한 공부도 필요한 것 같다. 어디까지나 내 의견이니 '~것 같다'로 말할 뿐이다.
참고로 김소월의 <진달래꽃> 하나쯤은 가정상비약처럼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은 비싸서 사지 않고 빌려보는 것이 현명하다고는 하지만 동네서점과 작가들을 위해서라면 최소한은 응분의 행동을 해야 힘이 날 것 같다. 먼 곳에서 상호대차로 주문이 들어온 책을 찾고 서류를 준비하면서 즐거운 기분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십진분류표에 골고루 나타난 세상의 이야기가 책이라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믿음이 있기에 도서관 문을 열고 봉사하는 것인데, 도서관이 무한봉사만을 해야 한다고 '책'이라는 무기로 다그치고 서비스 운운하는 것은 애초에 도서관이 만들어진 정신이 아닐 것이다.
시립도서관 누리집에 충분히(?) 설명된 사용법부터 다시 들여다 보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 난독증이나 문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직접 도서관을 방문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차 댈 데가 있나요?"(이 말은 차 댈 데가 없으면 안 오겠다는 말이다. 모든 이동이 차로 귀결되기에 차로 이용가능한 곳이 아니면 어려운 현실이 되어버렸다. 시의 중심에 있어서 사통팔달한 대중교통 요지인 데도 그렇다)하는 구실 대신 귀한 책을 위해 몸이 조금 불편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거미줄이 처음 시작한 곳을 알면 복잡하지 않고 단순명료하듯이 작은도서관에까지 이르면 또 다른 세계가 있기 때문에 직접 책을 찾아 몸을 움직여보면서 느껴보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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