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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효과

작은도서관 이야기

by 참도깨비 2024. 10. 1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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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자 마자 아침부터 대출 신청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날도 오다니! 해마다 명망가들이 예측하고 기대에 차 스스로 위대함을 자랑하였던 작가들은 술을 마시고 있을 테고, 한강 작가의 소식에 여러 곳에서 술자리를 예약하며 축하하고 있다. 

가까운 단골서점에 갔더니 주문이 끊이지 않고 그나마 있던 책은 누군가 예약해놓아 내주질 않는다. 지금 도서관리 시스템에 들어가니 또 대출 신청이 들어온다. 덕분에 지인들의 응원 문자도 온다. 내가 뭐라고, 박힌 보석은 언젠가는 빛나는 법이라며 응원해주니 기분은 좋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타고 나니 축하 기사와 함께 뜨는 기사를 보니 경기도교육청이 <채식주의자>를 모든 서가에서 퇴출시켰다는 기사와 한때 블랙리스트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K-문화가 어쩌니 하면서 무르익은 분위기를 한껏 내보내고 있다. 만약 노벨문학상을 타지 않았더라면 <채식주의자>가 서가에서 사라진 이야기는 그냥 묻힌 채 끝났겠지? 그런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섭다. 문학이 죽을 수밖에 없고 예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일이 어디 어제 오늘 일인가 싶지만, 어느 단체의 민원을 받아들여 성교육 관련 도서와 진보 도서가 사라지고, 교육 위해도서라고 없애라는 것 하나만으로 책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현실에서 한강 효과는 또 어떤 일을 불러올지 모르겠다.

 

아무튼 아침부터 대출 처리하고 없는 책은 채워볼까 하고 서점에 가니 주문은 밀려들고 전화와 문자가 계속 쏟아지고 있단다. 놀라울 따름이다. 한강 작가는 담담하게 수상 소식을 누리며 다른 작가의 작품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는데, 그 속내를 들어보면 도서관 서가에 꽂힌 수많은 작가의 작품, 특히 문학(특화 도서관이다 보니)에 관심을 갖고 독자의 삶에서 시작하는 시와 소설 등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런 관심과 읽는 힘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노벨문학상 소식은 그저 반짝 효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인쇄소가 바쁘게 돌아가고 평소에 주문하지 않는 인터넷서점에서 작가의 모든 작품 재고 상황을 연신 광고하고 있지만 이 한강 효과가 어디까지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겠다.

 

한강 효과가 이어지려면 문학 교육부터 다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니 말끝마다 k컬처가 어떻고 하면서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블랙리스트 만들고 반대만 하는 진보라고 해서 밥줄을 끊는 일부터 사라져야 할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블랙리스트였다가 아카데미 상을 받자 핍박했던 정권주체가 머쓱해졌다 하지만 틈만 나면 문화주체와 예술가를 무시하며 자기들만의 복합문화공간이니 보여주기식 토건 문화의 전당을 만드는 식의 공갈포들은 사라져야 한다. 작은도서관은 갈수록 힘들어지는데 곳곳에서 유휴공간만 생기면 도서관부터 집어넣는 지자체의 꼼수에 지쳤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한강의 책이 시립도서관은 물론이고 모든 작은도서관 서가에서 활발하게 회전이 되니 기분이 다시 들뜬다. 상호대차서비스에 합류하지 않았으면 도서관 문을 벌컥 열고 찾으러 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전화로 예약부터 하려는 사람들도 있으니 한 작가가 불러일으킨 회전효과를 당분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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