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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님 급구합니다

작은도서관 이야기

by 참도깨비 2024. 2. 2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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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시작은도서관협의회는 작은도서관들의 협의체다. 연회비 12만 원이니 월 1만 원으로 한 해 살이를 하는 곳이다. 청주 시내에 있는 작은도서관이 백여 곳인데 그 가운데 50여 곳이 회원으로 등록이 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회비를 내는 곳으로만 집계를 해보니 32곳이다. 며칠 전에 한 곳이 폐관했다고 알려왔으니 31곳이다. 월회비 6만이 넘는 협회가 아니어서 회비 대비 이익이 돌아가게 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니다. 가끔 회비를 내는데 우리한테 뭘 해줘야 하는게 아니냐고 묻는 분이 있어 하는 소리다. 회비는 회장과 사무국장(지금은 회계와 연락을 맡아주는 총무) 활동비 조금과 월례회의 후 점심 식사비와 임원모임 때 회의비, 총회 현수막 제작비, 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 단체연회비, 문구비 등을 빼면 남는 게 별로 없는 살림이다.

 

 올해 정기총회를 마쳤다. 새 집행부를 꾸리긴 했다. 어느 협회처럼 너도나도 회장과 부회장을 맡겠다고 나서는 곳이 아니라서 회장과 부회장 두 분이 연임하는 것으로 했다. 자천 타천으로 협의회를 위해 일해보겠다는 분이 없어서 임시의장을 뽑고 진행해도 총회준비회의에서 짜놓은 각본대로 움직을 수밖에 없다. 사진에 나온 도서관의 면면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어렵고 힘든 도서관 살림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즐겁게 힘을 내서 해보자'는 것 뿐이다. 부회장 한 분은 도서관 운영비를 벌려고 알바를 뛴다고 한다. 다른 한 분은 몸이 아파 도서관 활동을 쉬기도 했다. 작은도서관 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면 남는 건 스트레스와 몸에 이상이 온 지도 모르는 황망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작게는 5백 세대에서 많게는  몇 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도서관이라고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다. 임대아파트에 들어가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소속 도서관은 임대아파트 사정상 조합원들의 봉사로 꾸려가고 있다. 그나마 분양아파트 쪽 도서관들은 입주민들의 관리비에서 지원받기에 사정이 좋다지만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회의와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는 함정 아닌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관장과 관리사무소장, 봉사자가 함께온 도서관처럼 순조롭게 지원받고 프로그램도 많이 하여 시립도서관 지원을 위한 평가지표가 높은 도서관이 있는가 하면 입주자대표회의와 마찰이 있어 한 푼의 지원도 받지 못하여 관장 사비로 협의회 회비를 내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이런 저런 싸움 끝에 폐관까지 하는 곳이 있다. 

 

 작은도서관지원법에 의해 공동주택에는 작은도서관 공간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작은도서관은 나날이 늘고 있다. 여기에 복합문화공간이나 체육 시절에도 작은도서관을 만들고 있다. 책이 있는 공간을 통해 문화도시의 바탕을 만들겠다는 지자체의 의지이기도 하다. 도시재생을 진행하는 부서에서도 만들고 있어서 시립도서관이 관리주체가 되지 않는 곳도 부지기수다. 각자 예산을 끌어와서 작은도서관을 만들어놓고 시작했다가 공익요원 한 명 배치하고 운영만 하는 곳도 있다. 이래저래 할 말은 많으나 협의회의 현실 앞에 서면 아찔해서 그만 두기로 한다. 

 협의회의 구성을 보면 작은도서관 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1세대와 그 뒤를 이어 기관이나 단체, 아파트 학부모를 중심으로 좋은 아파트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시작했던 2세대와 작은도서관법으로 만들어진 아파트도서관의 3세대로 나눌 수 있다. 정확한 구분은 아니지만 그렇게 나눌 수 있다. 문제는 1세대는 관장이자 봉사자이기도 한 분들이 몇십 년째 도서관을 끌어오고 있어서 변화는 없지만 아파트를 중심으로 도서관 운동을 이끌었던 분들이 아이들을 키워놓고 물어남으로써 생기는 빈 자리를 맡은 관장(아파트는 대개 1년 주기로 바뀐다)이어서 해마다 '관장 급구'라는 공고문을 붙여야 할 지경이다. 그러니 총회를 할 때마다 새로이 바뀐 분들이 관장으로 참가해서 낯가림이 심하다 할 수 있다. 인수인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서 협의회 월례회나 행사에 자주 나와서 배워야 한다고 알려줄 수밖에 없다. 이 분들도 대부분 아이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도서관을 통해서 뭘 해보려고 하는 의지가 없어서 참여도가 떨어진다. 권역별로 따로 협의회를 만들어 연대하던 시절도 이제는 사라지고 있으니 소식조차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협의회를 운영해야 하니 총회 끝나고 워크샵(교육위원회 주관)을 하고 정기회의(월례회였다가 반월례회였다가 분기별로 해야 할 상황),전체 도서관이 참여하는 책 잔치(문화행사위원회),  이웃도서관 탐방(교육위원회), 정책포럼(정책위원회)과 청주시도서관을사랑하는의원모임(대회협력위원회) 같은 일들을 하고 있으나 지금은 위원회 꾸리기도 어렵다. 각자 도서관 활동하기에도 바빠 회의 자체가 안 되어 임원회의가 끌어안고 가는 현실이다. 급격한 변화인 셈이다. 전년도와는 눈에 띄게 달라진 풍경이어서 시립도서관에 등록되어 있는 작은도서관 대비 빈익부 부익부 현상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힘을 내서 즐겁게 꾸려보자고 연임된 집행부와 함께 시작했다. 총회가 끝나고 필수인 단체사진을 찍고 점심 식사를 하면서 나온 여러 이야기를 합산해보면 역시 '올해도 어렵다, 작은도서관을 바라보는 지원주체와의 소통이 문제다. 도서관 운영을 위해 맨땅에 헤딩해야 할 판이다, 당장 지원사업에 떨어지면 막막하다'는 것이다. 모두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화기애애하게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협의회만의 미덕이지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뒷맛은 씁쓸하다.

 

 혼자 꾸려가는 나 또한 진심으로 '관장님 급구합니다'라는 공고문을 붙이고 싶은 심정이다. 도시락을 싸들고 오는 아들이 안타까워 "맨날 찬밥 먹으니 어쩌냐? 밥도 못 해주고?" 하며 밥 사먹으라고 돈을 찔러주는 어머니를 보고 불끈 화를 내었다가 후회하고 말았다. 아들이 월급을 따박따박 받는 자리에 있으면 좋았겠지만 여기서도 충분히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좋은 소리로 할 수 있는 것을 "돈 많이 있어요, 찬밥도 안 먹어요!" 하며 화를 내고 말았으니!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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