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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사서 읽는 것이 기본이지 않을까

작은도서관 이야기

by 참도깨비 2025. 1. 1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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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이라는 시산문집을 냈다. 작가 소개란에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며 책과 시를 기본소득 삼아 살고 있다고 썼더니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온다. 기분이랄 것도 없지만 늘 어렵다. 작가로 사는 것이나 작은도서관 문을 닫지 않고 지내는 것 또한 기본소득이 없이는 어렵다고 말하면 뭔가 다시 도돌이표가 되는 기분이다.

 

어려운 시절에 책을 내고 나니 출판사나 저자도 어떻게 더 한 권이라도 팔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제임스 미치너의 장편소설 <소설>(열린책들)을 보면 작가와 출판사, 편집자, 독자로 나눈 장에서 한 권의 책이 나와서 독자들이 읽어내기까지 각자의 고충이 그려져 있는데 먼저 출판사로 쏟아지는 원고더미, 이른바 쓰레기무덤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출판사의 핵심인 편집자가 작가와 미치도록 하는 밀당은 말로 다 하지 못할 만큼이고 평론가와 독자의 몫까지 감당해야 하는 오르막에 오르막이 밀도 있게 그려져 있다.

 

그러니 책 한 권이 서점과 도서관에 들어올 때는 그 신산한 과정을 겪은 것이 대부분이고, 그러니 아는 작가가 책을 내면 먼저 주문부터 하고 본다. 같은 책을 사인본으로 보내올 경우에는 두 권이 되는 셈인데 사인본 보관 서가에 따로 두고 앞서 구입한 책이 어서 빨리 대출 되기를 바라며 신간 서가에 꽂는다.

 

거의 일 년 가까지 책을 낼까 말까 원고를 다듬고 편집자와 씨름하고 나서 겨우 낸 책인 만큼 잘 팔려야 편집자도 신이 나고 저자도 발을 뻗을 수 있다. 책을 내기까지 이 책을 꼭 내야 하나 싶은 부끄러움과 함께 뻔뻔함이 얼마나 교차하였겠는가. 그렇게 공들인 책이 나오고나서는 더한 폭풍이 몰아치니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다. 오랜 책지기로 가까이 지낸 작은 서점에서 서른 권이나 주문을 해주어서 북토크를 해보자고 하여(사실 내가 먼저 하자고 했음) 지난 가을 만들어놓은 단풍손수건을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어려운 시절에 선뜻 책을 팔아주겠다는 서점이 어디 있겠는가. <소설>에 보면 서점 또한 책을 팔기 위해 독자를 위한 행사를 하는 등 마케팅 차원에서 어려운 결단을 통해 책을 팔기 위한 여러 행사를 해야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싶은 서점이 또 어디 있겠는가. 모순 같지만 어떻게든 책을 팔기 위한 행위를 출판사든 작가든, 서점이든 해야 한다.

 

작은도서관을 하는 나로서는 작가이면서 이용자에게 좋은 책을 대출할 수 있도록 책을 구입해야 하는, 어쩌면 모순인 지경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내 책이 많이 팔리려면 공공도서관은 물론 작은도서관에서 사주어야 하는데,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책을 골라 비치하고 회원들이 그 책을 빌려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니 뭔가 충돌하는 듯한 기분이라는 것이다. 상생충북이라는 지역 독서생태계 활성을 위한 운동도 서점에서 작가의 책이 많이 팔릴 수 있도록 하는 선순환이라고 하는데, 도서관은 몇 권의 책만 구입하여 회원들이 돌려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니 작가로서는 어느 시점부터 한계가 있는 일이다. 작은도서관에 이르기까지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책을 우선적으로 구입해주어 읽힐 수 있도록 해주어 그 한계가 어느 정도 메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 내 책을 열심히 홍보하다 못해 거의 강매나 다름없이 도서관마다 신간 신청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우선적으로 구입해야 한다고, 좋은 책이라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뻔뻔하게 신간 안내글을 밴드에 올리는 것으로 소심한 작가의 첫발을 떼어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책을 좋아해서 시작한 작은도서관 사람들도 책 한 권 읽을 여유가 없는 활동가나 자원봉사자인 경우가 많아 책 선정과 구입까지 드는 어려움이 많다고 하니 서점을 공략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책을 주문해준 또 다른 서점에 가니 한탄부터 한다. 겨울이라 그런지 추위 피해 잠깐씩 들어오는 사람 빼고는 책 한 권 팔리지 않은 날이 많다고 한다. 여러 권을 주문해주어서 고마워서 선물 공세를 해볼까 하고 밀당을 하다 보니 더 충격적인 말을 전해온다. 한강 효과는 벌써 물 건너 간지 오래리고 서점을 이용하는 작가들조차 책을 사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어느 문학 작품을 읽고 공부하는 교실에서도 "책은 왜 사요? 빌려보면 그만인데요." 하는 소리를 한다는 시대이니, 그거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어서 놀랄 일은 아니라고 맞대꾸를 하며 함께 걱정을 하고 있자니 속이 꽉 막히는 기분이다. 작가 단체에서도 증정본이나 사인본 대신 한 권씩 사주자는 말이 나오지만 쉽지 않다. 서로 주고 받은 책이 있으니 어쩔 수 없더라도 한 권이라도 사서 다른 이에게 선물로 주는 것은 어떻느냐는 것인데 현실이 녹록지 않다. 그러면 작가들은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인가, 다른 좋은 작가의 작품을 사서 읽어주는 것이 기본이 아닌가,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열 권을 대출하면 한 권이라도 사서 읽고 방이 가득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기부는 어떤지, 별별 생각이 해보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잘 부탁한다고 나오면서 SNS에서 열심히 홍보하고 있는 책 한 권을 사서 돌아왔다. 수입이 많이 줄어 긴축재정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선뜻 구입해서 한 말이 있다.

"이 책을 사서 등록하는 즉시 대출 신청이 밀려들 텐데요...."

이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바로 대출 신청이 들어왔다. 맡은바 소임을 잊고 번뜩이는 생각 그대로는,

'아, 언제까지 책을 빌려보기만 하는 사람들을 위해 책을 구입하는 일을 해야 하는 거지?' 였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서  없는 책까지 구입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어지럽게 도는 대출반납건수를 봤을 때는 차마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한강 작가는 다른 사람들의 작품들까지 조명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지만 어디까지나 소수의 작가만이 누리는 특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자괴감까지 드는 것이다. 금속도 피로라는 것이 있는데 멀쩡한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는 자괴감. 

 

아무튼 바로 등록한 책을 대출해놓고 글을 쓰고 있는 이 현장감이라니! 오늘도 돌고 도는 상호대차 도서들을 보면서 '아, 나는 언제 저 대열에 끼나' 싶다. 독자들이여, 도서관은 커다란 책이자 위대한 유산인 것은 맞으나 책 한 권쯤 사는 것에 문화비 지출부터 줄이고 보니 옹졸함은 멈춰야 하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막 책을 낸 작가이자 작은도서관 관장으로서의 푸념이니 크게 괘념치 않으셨으면 한다.

 

그래도 얼마 뒤 작은서점에서 와인을 마시며 책 이야기를 한다는 광고가 나가고 한 권씩이라도 팔리고 있고, 애쓰고 있다는 책지기의 말을 들으니 기운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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