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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응어린이시인학교 어린이 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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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도깨비 2021. 9. 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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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 동무 들동무 들판으로 다니고

왜 권태응인가?
일찍이 이오덕 선생님은 권태응 선생님의 시와 동요를 두고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라고 하였다. 우리 나라가 곧 농사꾼의 나라이자 우리 말이 농삿일에서 생겨났고, 노래나 이야기도 춤도 농사꾼들의 것이었다고 했다. 자연 속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얻어진 말과 노래, 춤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정신 문화의 표본이 되는 것은 언제나 일하는 농사꾼의 자세 때문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안타까워 하신 것은 바로 권태응 선생님이 품고 있던 시정신과 비슷했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껏 이 땅의 아름다운 자연과 농사꾼들의 삶을 제대로 보여준 작가들이 얼마나 있는지, 그런 일하는 삶의 철학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자 애쓴 어른들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는 대목이다.
도시 문명 속에서나마 아이들의 건강한 목소리가 살아있어야 하는데도 자연과 놀이 속에서 외떨어져 처절한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해 보면 권태응 선생님의 시를 다시 읽는 까닭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우리 농사꾼들의 삶과 마음, 농사꾼 아이들의 세계를 이런 정도라도 보여 주고 노래해 보인 사람이 지금까지 우리 문학사에서 아무도 없습니다. 권태응 시인의 동요를 살피면서 새삼 애달프게 생각한 것이, 왜 우리 문학에는 자연과 농사꾼 아이들을 노래한 이런 동요시인이 겨우 한 사람밖에 없나 하는 것이고, 또 이런 동요나마 어째서 반백년이 지나도록 묻혀있기만 했나 하는 것입니다.(중략) 너무너무 늦었습니다만 이제라도 이 시인의 동요를 좀 알려서 우리 역사와 문학을 살피고 교육과 그밖에 모든 문화를 그 뿌리부터 반성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것을 심어 주고 이어 주고 싶었습니다.” -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소년한길)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내는 까닭’ 가운데-

한동안 이끼 낀 채 숨죽이고 노래도 잊고 시도 잊고 있어야 했던 권태응 선생님의 무덤 자리와 감자꽃 노래비를 생각하고 다시 지금의 아이들을 생각해 보면 현장에 있는 작가부터 시작하여 늘 아이들과 지내는 부모된 자리에서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일하는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좇아 나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권태응 선생님의 시정신을 기리고 문학제와 아울러 어린이시인학교를 여는 큰 뜻이 있다고 할 것이다. 농촌 아이들의 삶이나 도시 아이들의 삶이나 마찬가지로 이제 일하는 자의 건강함을 찾아야 하고 자기 자리에서 자기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바른 생각과 자기 목소리를 떳떳하게 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 아이들도 자연 속에서 멀어졌지만 자기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삶의 씨앗이 있고 공부와 놀이 속에서 찾아내는 참 기쁨이 있어야 하기에 권태응 선생님의시와 노래를 다시 읽고 불러야 한다.      

권태응 어린이시인학교
동무 동무 들동무
들판으로 다니고,
아지랑이 물결 속
나물 캐러 다니고.

동무 동무 놀동무
노래하고 다니고,
솔솔 바람 품 가슴
손목 잡고 다니고.

동무 동무 글동무
글 배우러 다니고,
동네 앞길 환한 길
“가갸 거겨” 다니고.
   <동무 동무>

‘들동무’ ‘놀동무’ ‘글동무’란 말만 새겨들어 보면 올해로 일곱 번째 맞는 권태응문학제와 아울러 어린이시인학교를 여는 뜻이 깊게 서려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권태응문학제를 하면서도 정작 권태응 시인의 시에 서려있는 어린이와 일과 놀이, 그리고 어린이 시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고 있던 터라 어린이시인학교를 어떻게 꾸려낼 것인가에 대해 충주작가회의 식구들 사이에도 깊은 이야기가 필요했다. 이번 행사를 말해주는 제목부터 “동무 동무 들동무 들판으로 다니고”라고 했듯이 권태응 시인의 시를 제대로 알고 그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고, 지금도 절실하게 필요한 노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첫걸음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첫 주제로 “자연과 놀이”를 들었다. 구체적으로 들자면 어린이시인학교를 통해 새로운 시체험을 할 수 있는 자리로 하고 첫째날은 어둠 체험을 하며 자연의 소리에 눈 뜨는 것과 아울러 시로 써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은 풀, 나무, 흙 체험을 바탕으로 시를 써보기로 했다. 그동안 학교나 학원에서 배운 글짓기 방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아이들의 눈과 귀로 겪어보는 참다운 어린이 시를 만나보자는데 큰 뜻이 있었다. 한 마디로 권태응 선생님의 시와 어린이가 만나는 뜻깊은 자리를 마련하자는데 큰 뜻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과 보고 느끼고 겪어내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에서 시작하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연과 놀이 속에 있는 그대로의 시를 캐내어 보자는 뜻이었다.  
어린이시인학교에 앞서 가진 권태응문학제 ‘어린이 시, 그림 잔치’에서 김녹촌 선생님의 참다움 어린이 시에 대한 강의와 현장에서 바로 구워낸 흙냄새 나는 시를 겪어보았기에 다소 낯설은 프로그램이 아이들과 더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어둠 체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했다.    

첫 번째 놀이- 어둠을 밝혀라

 밤을 지키는 파수꾼이 손전등을 가지고 눈을 감고 느티나무 앞에 앉아있다. 다른 사람들은 5미터 정도 떨어진 출발 지점에 한 줄로 서서 파수꾼이 앉아있는 곳에서 3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안전지대를 행해서 소리 내지 않고 걸어간다. 술래는 조그만 소리라도 들리면 그 방향을 향하여 손전등을 비춘다. 빛이 조금이라도 닿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다. 이때 손전등을 이리저리 휘둘러서 맞추는 것은 반칙이다. 움직일 수 없는 아이가 많아지면 놀이를 그만 두고 모두 출발 지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한다. 파수꾼에게 발견되지 않고 안전지대에 닿은 사람이 다음번에 파수꾼이 된다.

어둠은 지금 아이들에게 그저 어둡고 깜깜하다는 단순한 생각만 하게 하는데 어둠에 친해지고보면 어둠에도 그 깊이 다르고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면 온갖 자연의 소리들로 들어찬 새로운 세계라는 것을 느끼고 그 안에서 놀아보고 다음 단계로 든 ‘소리지도 만들기’로 들어가고자 준비한 프로그램이었다. 수상분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 술래가 손전등을 가지고 운동장에서 기거나 돌아서 오는 아이들의 인기척을 듣고 불빛을 비추면 아이들은 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다독이며 불빛을 피해 느티나무까지 가는 것이었다. 손전등 불빛에 드러나는 아이들의 몸과 들키지 않고 어둠을 밟아가는 아이들의 숨소리가 교사와 아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새로운 놀이였다. 이렇게 숨을 죽이고 어둠에 몰입하고 놀이에 빠져들어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지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 놀이 - 소리 지도 만들기

하늘을 보고 눕거나 각자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앉고 손을 뻗는다. 조용히 주위 소리에 귀를 기울여 소리에 집중한다. 서로 다른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하나씩 손가락으로 센다. 누가 가장 많은 소리를 들을까? 바람 소리,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풀섶에 바람 스치는 소리, 풀벌레 소리, 자동차 소리, 개구리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등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신을 둘러싼 소리들을 지도에 그려본다.  
종이 한가운데 자기가 앉아있는 자리에 + 표시를 하고 무슨 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를 표현하고 싶은 의성어로 종이의 적당한 곳에 표시한다. 소리 방향과 거리를 정확하게 나타내어야 한다. 지도를 그리는 데 시간을 빼앗기지 말고 소리를 듣고 자기만의 말로 나타내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주의할 점 : 소리를 듣는 동안에는 눈을 감는다. 모두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놀이가 끝날 때까지 되도록 움직이지 않게 한다.        



어둠에도 색깔이 있고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받을 수 있듯이 어둠과 친해져서 놀이를 한다는 것은 도시 아이들에게 있어 신선한 자극이 된 것 같다. 바로 옆 사람의 얼굴도 보이지 않고 군데 군데 웅덩이가 있고 고르지 못한 운동장을 발끝으로 더듬으며 나아가는 동안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옆의 사람 팔을 움켜쥐면서 즐겁게 놀이에 빠져드는 것이 바로 어둠 속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이 아닐까 싶었다. 이 기쁨은 아이들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이끌고 함께 즐기는 교사에게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새로운 바람으로 환기시키는 작용을 했다.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놀이판을 접고 느티나무 둘레에 저마다 마땅한 자리를 잡고 앉아 자기 둘레에서 들려오는 여러 가지 소리에 귀를 열고 소리 지도를 그려보았다. 어두워지기 전에 둘러보았던 곳인데 수많은 소리들로 꽉찬 숲이 되어있다는 것을 발견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흘러야 했다. 그만큼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면서 자기만의 소리 삼매경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소리도 있고 수없이 들었지만 그저 시끄러운 소리거니 했던 소리들이 살아있는 생명체와 아울러 파도를 치며 다가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느티나무 잎들이 수런거리며 바람을 맞는 소리에서 큰 길을 달리는 자동차나 하늘의 비행기 소리까지 한데 어우러져 정신을 집중하기 어려워했지만 몸을 낮추고 귀를 더 열어 집중하다 보면 등잔 밑이 어둡다고 꽤 많은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을 깨닫는 것 같았다.  

어떤 소리

어떤 소리가
봐아앙- 봐아앙- 봐아아앙-
이렇게 들린다
그 소리에
어떤 소리도
솨아아아아아
솨아아아아앙
이렇게 들린다
         김동수(칠금초등학교 2학년)

음악대

비행기가 지나가면서
위이이이잉 소리에
매미가 장단맞춰 노래 부르는 게
꼭 음악대 같았다

내가들은 소리
    박 소향

드르르 드루루
쎅엑 쌔엑
씨잉이 씨잉이
위이이잉
씨익쌔익
씩씩씩
쉬우우웅
쌔싹, 쌔싹
르르르륵
맴암맴암
씩씩씩
쉬쉬루룩
머어엉
부우우웅
샤아악
씨우웅
징징징징
귀뚤귀뚤
쒸이익
쒸욱
쌔앵
부웅웅
월월

위에 든 시는 이 모든 체험이 끝나고 그때 그 순간을 잘 살려서 바로 써낸 탓에 어둠과 소리 체험의 본뜻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몸과 마음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지만 하나의 소리라도 놓치지 않고 듣고 자기만의 말로 되살려내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인다.

비행기
김 세창

윙윙윙 비행기는 소리가 왜 클까?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소리는 크지만 안은 참 편안하다.

밤에 들리는 소리
       이 주명
‘뜨르르르르......’
밤에 밖에서
귀 기울이면 들리는 소리.

무슨 소리 일까?
궁굼해도 알 수 없는 소리.

위에 든 것처럼 알 듯 모를 듯 궁금증과 조급증만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만큼 무딘 자기 귀를 열고 새로운 체험을 하는데 있어 당연히 부딪힐 수 있는 것이기에 한 줄 한 줄이 새로웠다.  

음악대
이경재

맴맴맴맴
맴짹. 쯔르찌르 의잉~
의잉~ 콕! 아 맛있다 한다.
찌르찌르 찌르 마지막에는
강아지가  멍! 한다.
꼭 음악을 하는 것 같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서 마음에 받아들인 소리들은 잔잔하게 휘몰아치는 음악이자 낱낱의 소리들은 음악대의 그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서로 외떨어져 아무런 뜻이 없는 소리 같았는데 어둠 속에서 거짓의 눈과 귀를 벗어놓고 있으니 새록새록 돋아나는 음악의 경지였던 것이다.  


장윤지

길가에 지나가는 자동차한대
슈우우우잉위잉~
그러니 밤나무 위에
앉은 다람쥐 한 마리
쥐륵쮜륵, 쪼르르륵
내가 돌 위에 앉아 들어보니
신기한 소리 못 들어 본 소리

귀뚜라미
 김지은

어두컴컴한 밤
“찌르르르”
귀뚜라미가 운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잠이 솔솔 쏟아 진다.

‘소리 적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졸음은 쏟아진다.

그것도 모르고
“찌르르르”
귀뚜라미는 운다.

재미있는 소리
     서도담

맴맴 왈왈 아늑한 밤에
어둠 체험 소리 지도
만들기를 하였다.

숲 속에서 나는 소리,
하늘에서 나는 소리,
여러 가지 재미있는
소리를 듣고 적었다.

이걸 해보니까
재밌었는데,
더 재미있던 것은
소리를 듣고 있을 때 이다.

그러나 이런 소리들을 음악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재미가 아닐까? 재미가 있고 흥미가 있으니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고 바로 시로 몸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 많은 아이들이 제각각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골똘히 그 대상과 함께 하는 자세는 다르지만 그 소리 속에서 쏠쏠한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그냥 돌아서거나 무시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것은 도시의 생리가 빨리 빨리 움직이고 자연물에서 얼마만큼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교와 학원 공부, 계절도 잊고 놀이도 잊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스스로 재미를 붙여 일하고 놀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 것인가? 이렇게 아무런 제약없이 자연에 몸과 마음을 내놓고 있을 때에야 발견할 수 있는 재미야말로 아이들에게 크나큰 기쁨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 아이들이라고 해서 모두 마음이 메마른 것이 아니라 잠시라도 가만히 지켜보고 느껴볼 시간이 없었을 뿐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소리들을 들어보면 “발을 부스럭거리니까/‘윙윙윙윙윙’/‘휘익’/‘웅웅웅’”(허수정) 했다가“찌르르르르르르르/째음 째음짜음/삐뻑 삐빅삐빅/샤르르 쌱샥/이용이용이용/쉬이이익/월월월”(김현정)하는 식으로 그 자리에서 뽑아내지 않고는 그 맛을 느낄 수 없는 것들이었다. 흔히 모든 소리는 많은 이들이 표기하기 좋고 알아두기 쉽게 통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배워서 강아지는 ‘멍멍멍’, 매미는 ‘맴맴맴’ 하는 줄 아는 것에서 벗어난다는 것만으로 훌륭한 일이었다.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것은 제쳐놓고라도 그 소리들이 낱낱의 목숨들의 실체를 드러내고 그 속성까지 드러내 준다고 보면 그 어떤 표현보다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강아지가 “월왈왈왈왈왈왈 크르/왈와앙앙왈” 하고 짖는 소리를 듣고 “좋은 일이 있나보다”(한예지) 하고 느끼는 것은 바로 한 목숨이 된 듯한 새로운 발견이 아니고 무엇일까. 때로는 “눈감고 들어본 소리/쯔쯔쯔쯔 째애째애/쓰쓰쓱쓰쓰쓱/소리가 난다/누군가 소리를 낸다/이렇게 우는 걸 보니/짝을 찾는 것 같다”(한지원)는 것에서 보듯이 마음을 적시는 소리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자 어둠 속에서 소리나는 대로 마음을 맡기고 적었던 것들이 한편의 시가 된다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무엇보다 참을성 없고 학습으로만 여겨 귀찮아하던 아이들이 스스로 써냈다는 것에 교사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풀, 꽃, 나무, 그리고 감자
다음날 아침은 일어나자마자 산책부터 했다. 학교 뒤편으로 오솔길이 있고 논과 야트막한 산이 있어 식물도감에서나 보았을 온갖 풀과 꽃, 나무들을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걸어가면서 풀씨름을 하거나 온갖 생물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더할나위없이 좋은 체험이 아닐 수 없었다.

거미

우리가
꽃을 던지면
거미가 던질까
말까
참 힘들 것 같다
   
       김동수

아침 일찍 거미줄 가운데 도사리고 있는 호랑거미를 보고 아이들이 꽃을 던지려고 하는 순간에 쓴 시다. 자기와 무관한 생물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지나갈 일이지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금방 자리를 바꾸어 그 생물의 마음이 되어보는 것은 어린 마음 그대로 순수하다. 다른 아이들이 아무 생각없이 그 생명의 자리를 위협하려고 할 때 마음이 흔들리고 움직임 하나  하나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침

김지은

‘삐리릿’ 새가 지저귀고
‘매앰매앰’ 매미 소리에
잠이 깨어난다

이슬이 내려
촉촉한 잎

산책을 하니
매미소리 물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온다

그렇게 아침은
자연의 소리로 시작된다.

‘거미’란 생물과 함께 조용하게 깨어나는 아침이 자연의 소리와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도 산책길에서 얻은 평화로운 생각이다.    

아름다운 생물
    서유림
달개비, 환삼덩굴
매미 꽃, 뽕나무, 개망초 등
아름다운 생물들

움직이진 못하지만  
안에는 살아있네.

아~
아름다운 생물들
꼭 아름다운 눈 같네
바람에 따라
덩실덩실 추는
꽃들과 함께 춤추어 보자

그러나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시란 그 자리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기쁨이란 사실을 일종의 학습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시로 옮겨볼 생각거리를 적을 수첩에 곤충은 머리, 배, 꼬리 하는 식으로 나뉜다고 적어 넣거나 여러 꽃들의 이름과 함께 특징, 색깔 따위를 백과사전에 옮겨놓듯이 적기 바쁜 아이들도 있었다. 방학 숙제로 해갈 셈으로 그런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 순간까지도 공부의 긴장을 놓지 않는 것을 볼 때는 안타깝기도 했다. 그러한 긴장은 오히려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을 세밀히 분석하고 학습 자료로 만들 뿐이다. 그래도 “움직이진 못하지만/안에는 살아있네” 하는 시에서 보듯이 부분적으로 탈피해가는 가능성을 보이는 것만으로 좋은 시도임에 틀림없었다. 그것이 비록 교과서와 글짓기 방식의 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시가 이루어지는 핵심이 바로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데서 온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천천히 탈피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섣불리 매만져주거나 탈피의 순간이 괴로울 것 같아 젖은 날개를 펴주었다가 아주 불구로 만들어버리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애기똥풀

이 윤 희

애기똥풀은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
노란 색 황토색 등등 여러 가지 색이 있다
그리고 애기똥풀을 꺾으면 꺾은 끝에서
노란 즙이 나온다
그 즙이 애기가 똥을 싸서 즙이 나와 애기똥풀 같다

어쩌면 이것이 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설명하듯이 늘어놓는 것이 시가 될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안도현 시인이 서른이 넘어 애기똥풀을 발견한 것에 비하면 이것이 설명으로만 보이지 않고 몸으로 겪어보면서 해보는 일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이름만 알고 그렇거니 하는 것보다 손수 줄기를 꺾어보면서 애기똥을 떠올려보는 것이 새로운 시를 쓰려는 출발점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산책길에서 돌아와 아침밥을 먹고 나서는 학교 울타리쪽으로 난 풀과 나무들을 살펴보면서 어제 저녁에 찾은 소리의 실체와 함께 색깔을 살펴보고 어둠만큼이나 다양한 깊이를 느껴보기로 했다.

달개비
  김동수

파랑 노랑 보라
많은 색이 있다
우리들은 예쁜 공연하는 꽃
칠할 때는 꼭 미끌
미끌하다

달개비

달개비를 그리고
꽃잎을 따서 문지르니까
미끌미끌했다
색깔은 꽃보다 흐렸지만
잘 나왔다

여기에는 그냥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직접 그 색깔을 손에도 묻혀보고 종이에도 묻혀보게 하면서 다양한 느낌을 손수 적어보자는 뜻이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좋았다. 아울러 그 꽃을 그려보면서 그림물감 대신에 꽃을 짓이겨서 발라보았더니 미끌미끌하는 느낌이 손에서 살아나고 세밀화의 느낌 그대로 돋아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느낌이 좋아 너도 나도 비슷하게 해보는 것도 서로 다른 느낌으로 번지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 보면 어떤 아이의 눈에는 달개비가 생쥐와 닮은 꼴로 보이기도 했다.  

달개비

서소담

진짜 파란 색일까?
아님 보라색?
여러 가지 생쥐처럼
생긴 달개비
둥그런 쥐의 귀와
눈․이빨까지
쥐와 다름없는 달개비

생쥐 같은 어린 달개비
파랑, 연두 여러 가지 색깔들이
달개비에 붙어 있다
생쥐가 살짝 고개 들어
치즈 가지러 갔다가
입에 노란색 치즈가 묻었네
어린 달개비와 꼭 붙어다니는
파란 요정

달개비

강미홍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과 초록색의
달개비

아주 작아 향기도 없는지
알았는데
보랏빛 바람향기가 난다.

꽃잎과 잎물로 물들여진
내가 그린 달개비

내가 그린 달개비에선
진한 풀냄새가 난다.

마지막에 든 ‘진한 풀냄새’ 속에서 달개비를 마음에 그리게 된다는 점은 잡학박사에 머무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소리에 마음의 문을 열 듯이 눈앞에 있는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야말로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시로 다시 태어나는 기쁨이 아닐까. 그리고 곧이어 너그러운 자연의 품세를 닮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다가가면 아주 당연하게 저절로 깨우치는 것을 그동안 글재주로 이리 저리 비껴가는 숨바꼭질만 했던 것이다.    

나무

강지홍

나무는 참 너그럽다.

매미, 다람쥐, 새 식구들을
자기 몸에서 오순도순 살게 해 주고

우리가 나무에 올라가도
가만히 있어주며

나무는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해준다.

이러한 관심은 다시 돌고 돌아 울타리에 브로치마냥 매달려 있는 매미허물에게로 옮아갔다.  

매미허물
서도담

매미가 없는 매미허물이 너무 가볍고 껍질이 바삭바삭한 것 같다

아이들 말대로 아주 심심한 말 같아 보이지만 처음 보는 매미허물 앞에서 ‘가볍고 바삭바삭한’ 것은 새로운 말이 되는 셈이다. 과자를 표현을 할 때와는 다른, 알맞은 긴장과 살핌 끝에 얻어내는 말의 맛이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 매미가 껍질을 어렵사니 벗고 나무로 올라가 지금 울고 있음을 함께 발견하는 것이니 한순간에 너무 큰 자연의 질서를 본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어서 터져 나오는 시들을 보라.  

매미허물

이경재

매미허물
손을 빳빳!
발은 뾰족
매미가 벗어논 옷

애벌레 부딪치면 죽을라
밟으면 뿌셔질라
참 힘들다
색은 옅은 갈색

힘센 발로 풀을 붙들고
등을 갈라 옷을 벗네

매미허물을 보고 있는 자기도 온힘을 써서 한몸이 되어보려는 듯한 세심한 관찰의 힘이 느껴진다. 우리가 늘 입고 벗는 옷 같은 느낌과는 다른 존재의 실체를 느끼는 순간이다. 등을 갈라서 온몸이 빠져나오게 하려면 어찌 해야 하는지를 볼 줄 아는 것이다. 등을 갈라 옷을 벗기 위해 ‘손을 빳빳/발은 뾰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것을 그대로 시로 옮기고 보니 다른 아이들의 눈을 매미허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매미허물을 친구 등에 붙여놓고 시치미 떼는 아이나 아예 집으로 가져가 시와 함께 사진으로 올려놓은 아이를 보면 그때 그순간이 감동으로 몰려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풀, 나무, 꽃을 겪어보고 나서는 오후에 물놀이를 하고 나서 감자를 캤다. 학교 관사에 딸린 작은 밭에 심어놓았던 거라 일거리라고는 할 수 없지만 흙과 만나고 스스로 먹을거리를 찾아낸다는 점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시간이었다. 단지 호미와 낫을 들고 농촌 체험을 해보는 것이 아니라 흙과 감자, 그리고 지렁이와 같은 땅 속 생물들을 만나면서 이것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하는 시간이었는데도 그 두 가지 기쁨을 함께 안을 줄 아는 것이 아이들다웠다. 벌써 어둠과 소리, 색깔의 깊이 속에서 시를 뽑아냈던 것만큼 흙과 뒹구는 감자의 느낌은 다양했다.

(1)
흙 묻은 감자가 나와서
조금 놀랬다
감자만 쏙 나오는 줄 알았는데
흙덩인지 감자인지 모르겠다

(2)
흙 묻은 감자가 나와서
좀 놀라 기도했다
다 흙이 안 묻어서
나오는 줄 알았는데
그러나 큰 감자가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서투른 호미질에 지쳐서 감자가 나올까 싶었는데 줄줄이 달려나오는 감자가 흙덩인지 감자인지 모르겠다는 말은 첫느낌 그대로 밝기만 하다. 그렇게 기다리던 감자만 쏙 나오는 줄 알았는데 흙덩이와 다를 게 없어 보이는 감자를 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쓴 탓에 좋은 시가 된 것이다.

감자에 껍질이 거끌꺼끌하다
줄이 있는 게 신기하다
그리고 감자는 황토색이랑
무슨 색이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꺼끌꺼끌하고 그물처럼 줄이 있고 황토색만이 아니라 다른 색도 섞어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사과를 빨간 사과라고만 말하다가 오묘한 햇빛에 여러 색깔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과 비슷하다.  

울퉁불퉁하고,
여러 가지 모양인 감자.

납작 모양, 동그라미 모양,
울퉁불퉁한 모양이라도

맛은 여전히
너무너무 맛있는 감자

배가 고프다가도
감자 두 개 먹으면
언제 배고팠냐는 듯이
배가 빵빵하게 해주는 감자.

그리고 그 모양도 여러 가지인데다가 훌륭한 먹을거리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일찍이 권태응 선생님의 감자와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한 대목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리라. 역시 이런 일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형 따라 들어온 1학년 아이의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학교 어디에서 감자를 깼다
감자를 꺼봐이깠 너무 재미있었다

아직 모든 것이 어렵게만 느껴지던 범수에게 감자 캐기는 재미있는 일이었다.(이러한 느낌은 모든 체험이 끝나는 날에 해 본 자연 그림 그리기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작은 캔버스에 지금까지 겪었던 자연의 느낌을 아주 단순한 붓놀림으로 풀빛 산과 흰 여백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 재미가 “생감자를 처음 먹으면/새큼새큼하고 쓰다”가 “그 작은 씨앗에서 이렇게 많은 감자가 나오다니” 하는 감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스스로 일하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흙과 함께 지렁이를 만난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감자를 캤다.
캐면서 땅속에 있는
지렁이도 보았다.
감자는 흰색에
황토색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감자를 캤을 때
땅속에서 나오는
지렁이도 아닌 것을
지렁이라 하기도 했다.
지렁이를 끄내려다
그만 지렁이가 짤려져
죽어버렸다.

하는 시에서 보이듯이 지렁이가 아닌 것에도 놀라다가 이내 실수로 죽이고 말았을 때 느낌이 덤덤하게 묻어나온다.

감자밭에 감자가 없네
호미로 캐보니 나왔다.

점점 흙이 부서지고
부드러워져서 재밌다.
감자 하나 나오면
‘더 나왔으면’하고
더 나오면
더 파자는 욕심이 생긴다.

이젠 감자가 없지만
더 파 보니 지렁이네
“안녕?” 하고 가는 지렁이다.

하고 낯선 인사를 하기도 하고

지렁이가
    한설이

호미 들고 감자 캐고 있는데
지렁이가 불쑥 나타나자
깜짝이야!

꿈틀꿈틀 지렁이
색은 빨갛고 거무적접하다
독이 들었을까

지렁이가
꼼울럭 꼼울럭
지렁이가 있으면
땅이 좋아진다

나는 지렁이를 선생님에게 주지 않고
흙으로 덮었다
내 맘도 꼼울락거렸다

하고 함께 ‘꿈울럭’ 하면서 금세 친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농사꾼의 일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 일이지만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드러나는 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부드러운 흙에서
나오는 감자

캐다 캐다 나온
감자 보니 뿌듯한 마음

주먹만한 감자 보니
또 뿌듯한 마음
   - 한지원

작은 일에도 이렇게 뿌듯한 마음을 느낄 있는 시간이 부족했고 자연으로 향한 마음의 문을 닫게 하는 교육의 자리만 새롭게 놓는다면 밥 먹듯이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믿는 기쁨! 그 묵직한 것이 감자라고 생각하니 아이들이 깨놓은 감자들이 어느새 아이들과 하나가 되는 듯했다.  
그것은 어쩌면 궁금 덩어리로 시작하여 자연의 산물에게 자랑스럽고 담담한 친구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검댕이를 묻혀가며 감자를 구워 먹었다. 꿀맛이 따로 없고 둘이 먹다가 죽어도 모를 정도였다. 이것은 다 시의 기쁨이었다. 아무리 장난스럽게 감자를 먹여도 좋은, 진정한 아이들 시를 캐내는 시인학교다운 체험이었다.  

감자
              이주명

동그랗고
울퉁불퉁한
감자

감자의
모양은 왜
동글고
울퉁불퉁할까

궁금 덩어리인
감자

나무의 친구

한설이

나무의 식구는
다람쥐, 사슴벌레 등 많이 있다

이끼도 사람들은 싫어한다
하지만 나무에게는
그 이끼도 자랑스런 친구이다

내가 나무라면
그런 나무에게
‘너는 참 담담한 친구야’란
말을 하고 싶다


감자
            이 윤 주

감자를 처음 캐 보아서
“정말로 감자가 나올까?”
라고 생각을 했는데
내 주먹만한 감자가 나왔다

흙이 있을 때는 부드러웠지만
흙을 털어내니 거칠거칠했다

그 다음은 내 주먹보다
더 작은 게 나왔고
그 다음은 더 작은 게, 또
마찬가지로 열 개정도 나왔다

혹시 감자 식구일지도……



감자
      한 예 지

감자를 캐고 있는데
지렁이가 쑥 나와서
깜짝 놀랐다
무서워서 다른 데로 도망갔다

감자가 잘 숨어 있어도
나는 잘 찾았다

다 캐고
친구 언니 오빠들이랑
먹어보니까
감자가 참 맛있었다

 

 

* 이 글은 2004년 권태응어린이시인학교에 참가한 아이들의 시를 중심으로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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