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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 동무 놀동무 들판으로 다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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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도깨비 2021. 9. 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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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 동무 놀동무 들판으로 다니고
-2007년 제11회 권태응어린이시인학교 어린이시를 중심으로
                                                   
권태응어린이시인학교를 다시 열면서
두 해를 거르고 나서야 권태응어린이시인학교를 다시 열었다. 사실 권태응어린이시인학교란 거창한 이름으로 1박 2일 또는 2박 3일을 함께 하기에는 알찬 프로그램과 교사가 부족하고 무엇보다 권태응문학잔치에 쏠린 무게 때문에 일정을 잡기 어려웠기 때문에 두 해를 거를 수밖에 없었다. 길게는 2박 3일 일정이기에 어쩔 수 없이 여름방학 동안 시작할 수밖에 없었지만 여름방학이면 갖은 체험행사다 캠프와 겹치는 문제 때문에 소수정예로 모집한다고 해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시인학교 교장에서부터 각 모둠별 담임 교사제와 보조교사제를 바탕으로 소수정예로 이뤄져야 하는 만큼 현장에서 글쓰기 교육을 해본 교사를 확보한다는 문제점이 컸다. 그리고 함께 프로그램을 짜고 현장 답사와 프로그램 진행 상황을 미리 점검한다는 것 또한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권태응문학잔치와 함께 준비하게 되면서 많은 부분이 겹치고 점검 없이 지나버리는 것이 많았다.
 많은 아쉬움을 발판으로 하며 올해는 어떻게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다시 시인학교의 문을 열게 되었다. 여름방학 동안 시인학교를 열지 못하고 권태응문학잔치에 바로 이어서 1박 2일로 치러야 한다는 점이 안타까웠지만 백일장처럼 단일 행사에서는 맛볼 수 없는 아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성과도 있었다.
 권태응문학잔치에도 시잔치(백일장)이 있지만 함께 지내면서 시를 써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권태응어린이시인학교(이하 시인학교)는 여느 계절학교 못지 않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권태응 선생의 동요와 동시를 오늘의 아이들 목소리에서 되찾고 삶과 동떨어지지 않는 시를 쓸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한다는 것이 시인학교의 알맹이다. 그저 공부의 연장선처럼 진행하고 참여하는 체험학습과는 달리 자신의 삶 밖에서 겉돌던 자연 깊숙이 들어가 끊임없이 관찰하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개성을 살려 있는 그대로 써볼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고자 했다.

■ 시인학교 일정
6월 9일(토)
17:00 향산 미술학교 도착. 모둠 나누기
17:30 - 18:30 택견으로 몸 풀고 수화로 자연에게 말 걸기
18:30 - 19:30 가마솥밥 먹기
19:30 - 21:00 해질녘 관찰, 어둠 체험(소리 지도 그리기, 시 이어쓰기)
21:30 - 22:30 동화작가 박윤규 선생과의 만남
               - <버들붕어 하킴>을 중심으로 자연 이야기
22:30 - 23:00 모둠별 시 돌려 읽고 이야기하기

6월 10일(일)
07:00 - 08:00 아침 산책(수안보 조산공원에서 팔각정)
08:00 - 09:00 아침 식사
09:00 - 10:30 감자캐기
11:00 - 12:00 향산 미술학교 도착. 시 정리하고 시 책갈피 만들기
12:00 - 13:00 가마솥밥 먹기
13:00 - 14:30 치자 염색 체험, 나무 공예
15:00          시인학교 마무리


권태응 동요와 어린이시
산딸기를 보면 어느 동시 작가의 시가 떠오른다. 산딸기를 “숲 속의 등대”라고 한 은유가 지금도 아이들 글짓기를 가늠하는 잣대처럼 보인다. 아무리 오감체험이다 해서 접근한다 해도 산딸기를 보자마자 가시에 찔리는 걸 무릅쓰고 달려드는 아이들에게서 ‘숲 속의 등대’란 것은 어른들만의 기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모든 시는 비유의 시작이고 상상의 산물이라며 동시를 한정짓는 글짓기 교육에서 지금 아이들은 전국 어디에서나 “나무는 나무는 요술쟁이”식의 판박이 같은 동시를 쓰고 있다.

 나무

 팔랑팔랑
 나뭇잎이 인사를 해요.
 짹짹짹
 새가 나무 위에 집을 지어요.
 딱딱딱
 딱따구리가 나무를 파요.
 슥삭슥삭
 책상 만들려고
 나무를 베어요.
                                     00초등학교 1학년 000

학교에 갓 들어온 1학년 아이가 쓴 시에서도 나무는 이런 식의 운율을 가진 시일 수밖에 없다. 풀꽃들은 하나같이 들꽃에 잡초이고, 나무들은 뭉뚱그린 나무에 지나지 않는다. 저도 모르는 들꽃들은 “아프다는 소리도/한 마디 없이/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들꽃>1학년)고 나무는 “행복해요/자기는 더러운 공기를 마시지만/우리한테는 깨끗한 공기를 주어”(<나무>1학년)행복하기만 한 나무다. 학교에서 학습 대상으로 배운 나무 상식에 변변한 나무 이름 하나 아는 것이 없으니 뭉뚱그려 모두 나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산딸기 따 먹고 앵두 따 먹고 살구 따 먹으며 노는 일이 없으니 길가 가로수마저 공기를 맑게 해주는 인간 편의의 나무일 뿐이다.

빨강 빨강 앵두가
오볼조졸 온 가지.

아기들을 부른다.
정다웁게 모여라.

동글동글 앵두는,
예쁜 예쁜 열매는

아기들의 차질세.
달궁달궁 먹어라.

                      권태응 동요 <앵두> 전문

오롱종 매달린 도토리들,
바람에 우루루 떨어진다.

                      권태응 동요 <도토리들> 부분

‘동무 동무 들동무/들판으로 다니고’(<동무 동무>)라는 정서가 살아있던 시대가 아니라서 그럴까? 꼭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의 정서를 살려주고 자연과 연결시켜 주기 위해 갯벌 체험을 하고 농촌 체험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그 아이들대로의 삶과 둘레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마저 숨 막힌 채 닫혀 있게 만든 교육 시스템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권태응 동요를 불러보면 자연스럽게 감겨오는 놀이와 재미, 그리고 사람들의 삶 이야기가 느껴지는데 오늘에 와서 그 맥이 끊겨버린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전인(全人)교육에 창의성 교육을 목표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아이들은 눈앞의 자연을 보더라도 곁눈질을 할 수밖에 없고 학습 대상으로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도 현장교육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찍이 권태응 동요에서 대안으로 찾아낸 권태응문학잔치와 시인학교에서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아이들의 진정한 목소리를 들어주고 저절로 나올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지도교사라고 해서 시를 써라 마라 하지 말고 함께 프로그램을 살려가면서 시를 써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어른들의 정서만으로 지어진 동시에서 벗어나 어린이시라는 당당한 구분 아래 삶에 더 가까이 들여놓자, 권태응 동요를 부르듯 자연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자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이번 시인학교에는 100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신청을 하는 바람에 담임교사와 보조교사가 투입이 되었는데도 진행이 무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너무 많은 아이들을 상대로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뒷말이 나오지 않는 행사를 위해 통제만 하다가 마는 것은 아이들에게나 시인학교에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1박 2일의 팍팍한 일정으로 심도있게 치르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모둠별로 겪고 느끼고 쓰고 돌려 읽고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최선을 다하며 진행해 나가며 나름대로 적잖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글짓기 교육의 전형에서 벗어나 자신의 느낌과 목소리로 들려주는 시가 있는 그대로 훌륭한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둠을 밝혀라
시인학교 프로그램은 저녁 무렵부터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연히 느낄 수 있는 변화를 오감으로 받아들이면서 시작했다.

내가 본 노을은
여러 가지 색.

빨간색, 연분홍색, 연보라색
노을은 여러 가지 무지개.

                             칠금초 5학년 조환식 <노을>

높은 산이 있어 해가 넘어가면 금세 어두워지는 곳이지만 서쪽 하늘의 미세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만큼 아이들과 천천히 느껴보면서 관찰한 것을 기록해 두었다가 시를 쓰게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마지막 햇살을 받아가며 색깔을 달리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교과서에서 배운 동시 형식과 내용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여러 가지 색을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들어있는 문장들을 꺼내 기록하는 학습지를 넘지 못했다.
 
점점 어둠이 찾아오고
내 마음도 어두워지고

개구리 울음 소리 갤갤갤
귀뚜라미는 귀뚤귀뚤

                 칠금초 5학년 조원상 <어둠 체험>

밤이 되자
어둠이 찾아왔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10개의 작은 호박들이 나타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박들에게
감자를 주었다.
그러자 호박들이 사라졌다.

                          예성초 4학년 이석우 <작은 호박>

여러 아이들과 섞여 처음으로 해보는 프로그램에 낯설은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시가 나오기도 했다. 아직은 제대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엇을 잡아 썼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시들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리 낯설지 않고 편안한 곳으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시들! 아이들이 시를 읽어주기도 하고 프로그램에 대해 충분히 알고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자기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일종의 도미노 현상이라고 할까? 산바람이 팔뚝에 소름을 돋게 하는 것이 개구리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혼자만 뚝 떨어진 듯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 같았다.

해가 달에 가려지면
개구리와 귀뚜라미의 울음 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구름은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사라진다
산과 꽃들은 밤하늘의 색과 같이
색을 맞춘다.

                  청원 낭성초 5학년 연해린 <어둠 체험>

그러면서도 간간히 미세한 변화를 잘 잡아서 쓰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앉아서 오감을 살려서 쓰면 있는 그대로가 시가 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똥구멍에 노란 전구를 단
반딧불이가 보고 싶어.

향산미술학교에 가 보았지만
들려오는 건
개굴개굴 개구리 소리뿐

내가 보고 싶은
반딧불이는
도대체 어디 있을까?

                    성남초 5학년 송형우 <반딧불이>

한편 자기가 보고 싶었던 대상을 떠올려 쓰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아이에게는 어둠 속에서 본 적이 있던 반딧불이가 얼마나 그리울까? 사람들이 만든 불빛이 아닌 자연에서 불을 지피듯 스스로 발전하며 비추는 빛이 거꾸로 어둠 체험을 통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오늘 내가 본 밤하늘은
별이 일곱 개인
북두칠성
별 중에 가장 눈에 띠는
금성 아주 마음에 드는
금성
수박까지 한 입에 쏘오옥
더 멋있어 보이네.

                    칠금초 5학년 안민호 <내가 본 밤하늘>

어, 어, 어 하는 순간에 금세 어두워져 하늘 한 가운데 북두칠성이 떴을 때 모든 아이들이 올려다 보며 별자리 이야기를 하며 쓴 시다. “어디?” “저기 있네, 국자 모양으로 생긴 거 말이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쪽 하늘에 가장 먼저 뜬 금성을 점찍어 놓았다가 장난스럽게 수박과 곁들여 썼다. 아무래도 산으로 둘러 싸여 있어 그나마 서쪽으로 트인 곳에 밝게 빛나는 별이 마음에 잡힌 모양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놀았다.

그러다 땀도 흘리고
시원한 밤이 왔다.

이제 우리는 땀도 식힐 겸
맛있는 수박을
아삭아삭!

           성남초 4학년 김민호 <시원하고 맛있는 수박>

그런 가운데 ‘밥 먹고 합시다’ 하는 식으로 별스럽게 굴면서도 시원스럽게 시를 잡아 쓰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변신로봇처럼 글짓기 교육에 발을 담고 있는 마음이 시냇물에 발을 담그면서 일어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재미있는 시들과 시들한 시들이 많았다.

어둠 체험은 생각보다 너무 짧게 끝나버렸다. 중간 중간에 ‘어둠을 밝혀라’ ‘소리 지도 기르기’ ‘이어서 시 쓰기’를 해보았는데 많은 아이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다 보니 조용한 가운데 진행하기 어려웠고 모둠과 모둠이 겹쳐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산 속에 들러싸여 있는 데도 가로등과 자동차 불빛 때문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지 못해서 술래가 어둠을 틈타 다가오는 아이들을 손전등 불빛으로 걸러낸다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도 영화에 나오는 광선검처럼 길게 뻗지 못하는 손전등 불빛에 걸려서 다시 술래가 되고 싶은 아이들과 어떻게든 안전지대로 오기 위해서 몸을 낮추며 기어오는 아이들이 섞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풀밭에 자리를 잡고 자기 둘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해서 소리 지도를 그려보는 것도 가까운 데서 아이들 소리에 묻혀 오는 개구리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 외에 별다른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아울러 ‘이어서 시 쓰기’도 해보았는데 모둠을 두세 사람으로 나누어 한 줄씩 이어 시를 써본다는 독특한 체험 이상이 되지 못했다.

해가 천천히 인사하며 지고 있다
지고 있어서 그런지 가로등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풀벌레가 우리에게 멋진 노래를 들려준다
나는 풀벌레의 노래를 들으니 잠이 온다
우리는 한마음 꽃냄새에 취하여
뒤뚱뒤뚱 서서히 눈이 감긴다
무서워도 서로 용기를 북돋아준다
하지만 아까 전에 들은 풀벌레 소리 때문에
잠이 잘 온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다

혼자만의 느낌과 생각을 바탕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쓴 시 한 줄을 받아서 쓰다 보니 억지로 시를 만든 흔적이 많았다. 그리고 익히 알고 있는 동시풍의 느낌으로 돌아가는 듯 보이는 시들이 많았다.

한들한들 풀들 한들한들 꽃향기
친구들과 만나 많이 친해지면서 제일로 재미있는 캠핑이 됩니다
향기로운 풀꽃 냄새 가득한 여름밤 귀뚜라미 귀뚤귀뚤 지저귀고, 시큰냄새 물신 풍기는 한여름밤
키 큰 나무들은 반갑다고 한들한들
어두운 밤하늘에라! 친구들과 둥글게 모여앉아 시를 씁니다
함께 즐기는 즐거운 여름밤, 별 하나 별 둘 별 셋, 아름다운 별들도 떠오르네.

하얀 빛 띄는 고운 풀꽃
어두운 하늘 아래 하늘하늘 춤을 춘다
살랑살랑 바람 따라 이리 저리 춤춘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바람도 멈춘 땅에
풀꽃 혼자 남아 조용히 조용히 우릴 올려본다
아이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시쓰기에 열중해 있고
우리 아직도 다 못 쓰고 이렇게 헤매고 있다.

 앞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자신의 느낌을 적어나간다는 뜻에서 생각밖에 좋은 시가 나올 수도 있는데 동시풍으로 흘러버려서 아쉬웠다.

아침 산책길에서
다음날 아침에는 산책을 했다. 맨몸으로 아침 산길을 걸어보면서 풀과 나무들을 만나며 느끼는 것이 곧 좋은 시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저 아침 산책을 하면서 잠이 깨고 하루를 즐겁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오늘 아침에 하는
산책
참 재미있다.

하지만 다리가 아파
쩔쩔 매는 나다.

산책하는 건 좋지만
힘든 건 싫다.
    칠금초 5학년 전효인


마음이 편해지는 산책
60도의 가파른 경사에도
내리막길 없는 험한 산길

험한 일들을 겪고 나면
시원한 팔각정이 나타나요.

               칠금초 5학년 서동현 <산책>

졸음을 쫓고 뒷산을 올라갔다 오는 것이 벅찬 아이들도 있었다. 산길을 오르면서 산딸기와 오디를 따먹기도 하니 즐거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산딸기와 오디 맛을 본 아이들이 너도 나도 산딸기 가시를 무릅쓰고 따먹는 것을 보면서 저 맛을 잘 우려서 시를 써야 할텐데,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함께 즐거운 산책을 하며 서로를 익히는 것도 좋았다.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아이들도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것도 좋은 시이지 않을까. 마음대로 잘 안되는 것마저 솔직하게 쓴다는 것이 아무런 편견 없이 자연을 볼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니 말이다.

대롱대롱 달려있는
산열매
붉으러언
산딸기는
“아이고 맛있어”
하며 웃지

대롱대롱 달려있는
산열매
빠알간
뱀딸기는
“이게 무슨 맛이지?”
하며 찡그리지

대롱대롱 달려있는
산열매
시커먼 오디는
“아이고 달아라”
하며 빙그레 미소짓지

                     성남초 5학년 이희지

그런 가운데 한껏 멋을 부린 시를 쓰는 아이도 있었다. 시라면 으레 그렇게 연을 나누고 재미있는 발상을 다른 것과 견주어가며 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꽃이 피는 것도 한순간이지만 해 넘어가는 저물녘처럼 마음을 끌어주는 이야기가 있는 법인데 너무 형식만을 따져서 ‘산딸기’와 ‘오디’를 그세 잊어버리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웠다.


겨드랑이에 털이 많은 겨털 선생님
겨드랑이에 털이 많지만 성질은 착하시다.

겨털 선생님과 보내는 하루
너무 재미있다.

       성남초 3학년 김승민 <겨털 선생님>


오늘 산에서 산딸기를 보아서
먹어보려고 했는데
가시가 있어서 가시에 찔렸다
눈물이 쬐끔 나왔다.
그 가시는 껍데기였다.
그래서 껍데기를 떼서 먹어 보았더니
달고 맛있어서 자꾸 자꾸 먹고 싶어져서
1개를 더 따 먹었다.

              칠금초 3학년 조원상 <산딸기>


이런 현상은 고학년으로 갈수록 머릿속에 단단히 자리잡혀 좀처럼 헤어나기 어려운 듯하다. 차라리 자기만의 개성이 잘 드러나도록 거침없이 쓴다면 좋으련만 서둘러 숙제하듯이 완성해버리는 것을 보면서 이게 어디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중간 중간 보석처럼 빛나는 자기 시를 쓰는 아이들을 만났을 때 즐겁다. 가시와 껍데기를 혼동하는 초보자답지만 달고 맛있어서 1개를 더 따 먹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솔직하고도 훌륭한 시가 될 수 있다고 거듭 칭찬해주는 재미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한 걸음 한 걸음 더딘 걸음이지만 가시에 찔려 눈물이 쬐끔 나왔지만 가까이 다가가다 보면 더 이상 자연과 사람의 삶이 따로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테니 그게 바로 전인(全人) 교육으로 가는 들머리가 아닐까?

새싹은 땅콩만큼 작은 새싹
새싹은 꽃이 핀다는 뜻
새싹이 크면 무엇이 될까?
꽃이 되지! 열매가 되지!
새싹도 아기를 낳겠지.
예쁜 아기.

                 성남초 4학년 이민형 <새싹>

아직은 어떤 새싹인지 모르지만 작은 새싹이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머니 뱃속에서 누런 태반의 찌끼를 둘러쓰고 나오는 아기처럼 씻겨내야 할 것들은 많지만 꽃이 되고 열매가 되는 것들을 이곳 저곳에서 바라보고 느낄 수 있다는 그 시작만으로 좋지 않을까?

하늘처럼 높이 솟은 소나무
가늘긴 하지만
하늘을 찌른 듯한 높이의 소나무

찐득찐득 송진
먹어보니 맛이 떫지만
자연의 맛이 느껴진다.
말하자면 나무 껍질맛

겨울에도 푸른 소나무
그 기상도 하늘을 찌른다.
                    성남초 4학년 김수한 <소나무>

자연에서 느끼는 기상과 감성은 언제나 사람들을 둘러싸고 흐르고 있기에 정복의 대상, 경계의 대상이 아닌 푸근한 대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현장 교육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불그렇고 동글동글한
산딸기
쓰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하다.
친구들과 다 같이 맛있게 따 먹으며
맛있다고들 하지.

불그렇고 둥글둥글한
뱀딸기
하나 따 먹고 맛이 안 나
아, 이것은 뱀이 먹는 거구나
아무튼 한 개씩은 맛을 보았다.
산딸기와 뱀딸기
구별이 안 되는 사람도 있을까?

                       성남초 5학년 유혜민 <산딸기와 뱀딸기>

그래서 뱀딸기와 산딸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아이의 새침떼는 시도 좋게 보이는 것이리라.

감자밭에서
시인학교 마무리는 직접 감자밭에 가서 흙을 만지고 감자를 캐는 일이었다. 감자꽃이 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감자알이 다 여물지 않았지만 직접 흙을 만지고 캐는 만큼 감자를 가져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처음으로 감자를 캐러 갔다
감자를 먹기만 했지 캐보기는
처음이다
나도 감자를 잘 캘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감자를
캐러 간다

처음에는 감자가 쑥쑥 잘 나왔는데
몇 개 캐고는 감자가 나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크고 굵은 감자들이 쑥쑥
잘도 나오는데

나도 큰 감자를 하나 뽑았다
열심히 한 것 같아
기분이 뿌듯해졌다

             성남초 4학년 전다혜 <감자>

호미를 쓰다 보면 감자가 상할 수도 있고 가까이 있는 친구의 손이나 자기 손을 다치기도 해서 직접 손으로 감자를 캤다. 부드러운 흙이어서 포기째 뽑아내고 나면 손쉽게 캘 수 있어서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감자를 시장에서 사먹기만 하다 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직접 캐는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감자를 먹기만 했지 캐보기는/처음’이라는 아이가 갖는 ‘나도 감자를 잘 캘 수 있을까?’ 하는 당연한 마음이 잘 드러났다. 다른 사람들이 캐면 쑥쑥 잘 나오는데 자기는 그러지 못했을 때 느끼는 마음이며 큰 감자 하나를 뽑고 나서 뿌듯한 마음이 잘 느껴진다.

동글동글한 감자
음식해 먹으면 맛있다

감자떡은 쫄깃쫄깃 맛있다

오늘 처음으로 감자를 캐보았다
원래 호미가 있지만
손으로 캐는 재미가 있다

참 감자조림은 맛있다
난 감자가 좋다
부드럽다

     성남초 3학년 최윤환

 손으로 캐는 재미를 더 자세히 쓰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감자로 해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며 감자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족한 시다. 먼 나무처럼 대하며 아는 상식을 털어놓는 시에 비하면 훨씬 나은 시라고 할 수 있다.

어느 감자밭
흙 냄새, 감자 냄새가 난다.

나 찾아보라고, 나 찾아보라고
꼭꼭 숨어있다.

왕감자 중간 감자, 작은 감자
다 찾아서 먹으면
감자들이 불쌍하다.

           성남초 5학년 김진현 <감자 캐기>

무엇보다 같은 일을 하고도 감자를 대하는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불쌍하다는 말을 남발하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흙냄새를 맡아보고 감자 냄새를 맡아본 아이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드리라.
조금은 판에 박은 듯 어른스럽게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함께 쓴 다른 시에 보면 경계를 하며 처음 느껴보는 감자 캐기와 눈치 보면서 자기 것과 남의 것을 비교하는 아이다운 느낌을 짤막하게나마 표현한 것도 있어서 상생의 길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감자,
더럽지만 맛있는 감자
내가 뿌리를 뽑을 때 아주 작은 게 나왔다
그때, 나는 알았다
그것도 자연의 이치인 것을.

                       우암초 3학년 이한길 <감자 캐기>

내가 감자를 캘 때
지렁이가 있는 줄 알고 살살 팠더니
애들은 왕감자를 파고 있었다.

                       우암초 3학년 이한길 <감자 캐기>

아무래도 감자 캐기가 가장 뿌듯하고 뭔가 건지는 기분이라서 그런지 많은 시가 집중해서 나왔다. 비록 아주 세심하게 살피고 건져낸 표현은 드물지만 자기 개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시들이 한 뿌리에서도 저마다 다른 감자알을 보는 것 같았다.

오늘 감자를 캤다.
동글동글한 감자
작고 작은 감자

땅을 파서
땀을 뻘뻘 흘려서
캔 감자.

부모님에게
빨리 갖다 주고 싶은
감자

                        성남초 3학년 김병준 <감자 캐기>

커다랗고 조그많고 여러 가지 모양의
감자를 캤다.

감자를 캘 때 줄기를 뽑고
흙을 파면 감자가 나온다.

흙을 팔 때 손톱에 흙이 들어가면
흙을 빼려고 힘을 쓴다.

감자를 캘 때 커다란 감자가 나오면
손을 더러워졌어도 뿌듯해진다.

                           성남초 4학년 주찬식 <감자 캐기>

달그락달그락
감자를 캡니다.

와! 큰 왕감자다!
에이~ 내 건 작은 거야.
큰 감자, 작은 감자를 들고
버스로 향하는 아이들

손에 흙이 많이 묻어도
많이 캤으니 뛸 듯이
정말 기뻤다.

                           000 <감자 캐기>

감자를 캐면
지렁이가 나와요.
땅 속에서 춤추는 지렁이.

감자를 캐면
벌레가 나와요.
나 살려라 도망가는 벌레.

감자를 캐면
뿌리에서 자라는
아기 감자가 나와요.

                     칠금초 5학년 이우민 <감자를 캐면>

6월에 감자를 캤다.
감자가 많이 있어서 정말 뿌듯했다.
하지만 감자 1개를 따먹혀
별로 좋지 않다.
많이 캐지 못하여 별로 좋지 않다.

                        칠금초 5학년 유세종 <감자>

금세 감자로 놀이를 하면서 써낸 아이들에 자기 것과 남의 것을 비교해서 좋고 나쁜 것을 따지는 아이들의 차이는 그리 많지 않다.

감자를 손으로 파서 쑥 빼고
땅을 파면 둥글둥글한 감자가 나온다.
가끔씩은 작은 감자도 나온다.

계속 파다 보니 어느새 감자가 한 봉지가 된다.
그러다가 그만하면 아쉬워 한다.

                      남산초 4학년 한인구 <감자 캐기>

팍팍 퍽퍽
감자를 캔다.

내 거야, 아니야
내 거란 말이야
하며 경쟁 중

사이좋게
나눠가며 캐면
얼마나 좋을까?

                풍광초 5학년 강민구 <감자 캐기>

언제나 먹어도
맛이 있는 감자

다 같이 먹자
오물오물 맛있게

모두 감자 세상이
된 것 같다.

                    예산초 2학년 신이주 <감자>

그래, 이 녀석들이 막 흙밭에서 나온 감자들이고 함께 얼굴을 들여다보고 웃는 것만으로도 참다운 어린이시로 가는 길이 멀어보이지 않다는 희망이 보였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우리가 사는 도시가 보이고 바다에 가면 바다가 보이듯 그렇게 훤한 눈으로 바라보면 애면글먼하지 않아도 되겠지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시인학교였다.


감자를 한 알씩 한 안씩 캐다 보니
더 캐고 싶은 마음 넘쳐나는구나.

내 것을 다 캐다 보니
다른 친구 것 캐고 싶구나.
내가 친구보다 더 적게 캐니
친구 것 갖고 싶구나.

                           탄금초 5학년 정예찬

감자 캐고 나서
친구랑 감자 따기 한다.

“가위 바위 보”
한 개 주고 한 개 받고 나서
친구가 그만 한다.

                                       칠금초 5학년 조은상 <감자>

산꼭대기에 있는 전망대
올라가면
도시가 다 보이는 전망대

바다에도 있는 전망대
올라가면
앞바다가 거의 다 보이는 전망대.

             삼원초 3학년 권경민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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