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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택훈 동시집 <두점박이사슴벌레 집에 가면>

독서일기

by 참도깨비 2022. 2. 1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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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예쁘고 달달한 동시집이 있다냐? 손 안에 딱 들어오는, 내가 지난 여름시인학교에서 가슴에 잠깐 달았던 사슴벌레처럼, 곶자왈에서 주운 나무토막을 깎아 만든 두점박이사슴벌레처럼 작은 책의 묘미를 느껴보기는 처음이다.현택훈 시인은 몇 해 시집 읽기 때 시로 만났다. 그때 <감산리 경유>를 읽은 사람들이 지금 내가 느낀 감동을 받았더랬다.
 
 
시외버스가 하루에 두 번 지나가는 감산리
내리거나 타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도에서 감산리 경유 노선을 폐지한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버스가 구릉이 있는 길로 들어서자
평평한 도로인데 몇 번 덜커덩거립니다
바위그늘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정류장
오늘은 웬일일까요
돌하르방이 버스에 올라탑니다
노루가 귀를 쫑긋 세우고서 들어옵니다
참새가 열린 차창으로 들어옵니다
반딧불이도 들어옵니다
난리 때 인민유격대 대원이었던 사내가
제사 지낼 식구도 없는 감산리에 들렀다가
버스에 시적시적 올라탑니다
흙 묻은 옷 더벅머리 사내는
버스 차창에 머리를 기대어 낯선 노래를 부릅니다
나는 그 노래를 받아적고 싶지만
축축한 물기운이 버스에 가득 차서 그만둡니다
사내의 바지에 붙어 따라온 환삼덩굴이
줄기를 뻗어 시외버스 속을 가득 채웁니다
어느새 버스는 만원입니다
이 많은 것들이 모두 버스에 타느라 정작
읍내 오일장에 가려는 서동 묵은터 할머니는
버스를 타지 못했습니다
할머니는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버스 정류장 근처 점방에 가서 화투를 칠 것입니다
손님이 오는 날인가, 매화가 더욱 붉다며 패를 떼겠지요
현택훈, <감산리 경유>
천상 시인임을 알았는데 이렇게 동시에 뿌리를 두고 있었구나.
 
언젠가 지나간 적이 있는 먼물깍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한 방울
한 방울
안약을 넣는다.
제주도 눈동자.
현택훈, <먼물깍>
제주에 사는 사람 아니고는 이렇게 쓸 수가 없다.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고마움과 그곳의 역사를 살아낸 사람들에 대한 경외감이 없으면 쓸 수 없는 시다. 그러면서도 이번 동시집에는 힘이 들이지 않고 게으른 눈으로 몸을 재게재게 곶자왈로 오름으로 움직이며 쓰는 그대로의 말이 실려있다.
콩박가시는 아까시나무가 집이고,
장미가위벌은 찔레나무가 집이고,
남방부전나비는 괭이밥이 집이다.
비바람 치면 다들 어디에 가 있나 했더니
모두 집에 들어가 창문을 닫고
라디오 들으며 낮잠을 잔다.
그래도 우산도 없이
비 맞으며 돌아다니는 것들이 꼭 있다.
개구리는 비 맞으며 노래하고,
달팽이는 비 오는 날 이사하고,
지렁이는 빗물에 목욕한다.
현택훈, <비 오는 날>
시를 쓴다기보다는 눈으로 부려놓은 시다. 나한테도 어머니가 늦잠 잔다고 에둘러 하시던 말씀이 '눈만큼 게으른 게 없다'고 하셨는, 나는 그저 게을러 빠진 것뿐이고 현택훈 시인은 진짜 게으른 눈으로 '작가의 말'을 쓰다가도 곶자왈 갈 정도로 제주와 한몸 한마음임을 보여준다.
'사계절 꽃 피고 바람 좋은 제주도에 내려와서 멍멍이와 냥냥이와 버렝이와 검질과 함께 지내'는 박들의 그림 또한 한편의 시그림책을 만들었다. '그림과 생태적 삶으로 만든 뫼비우스 띠 안에서 도는 중입니다. 아직 육지것의 눈으로 보는 제주 풍경을 게으르게 그리며 살고 있'다는 그림 작가의 낮은 자세 또한 오름을 닮았고 시인의 시를 닮았다. 이렇게 시와 그림이 잘 만나기도 어려운데 이 작은 시집이 그 어려운 걸 해냈다.
 
두점박이사슴벌레는/곶자왈에서만 살아서/곶자왈은 두점박이사슴벌레 집이에요.//곶자왈에 가면/두점박이사슴벌레에게 인사해요./개가시나무, 때죽나무도/반갑다며 손을 내밀어요. (현택훈, <두점박이사슴벌레 집에 가면>)

딱 이렇게 어느 장을 펼쳐도 그 둘의 약속과 길이 보이는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이렇게 살피며 걷는 것임을 시로 보여주고 있다.

 

봄날 점심시간

국수나무 식당에

손님들이 가득해요.

 

알락하늘소는

단골이고,

호리병벌은

아예 그릇에

얼굴을 묻고 있네요.

 

늦잠 자다

뒤늦게 도착한

꽃무지가 허둥대며

국수나무 꽃에 날아드네요.

 

하얗게 꽃 핀

숲속 국수나무 식당.

 

현택훈, <국수나무 식당>

 

국수나무 가지 속을 나뭇가지로 밀면 진짜 국수처럼 밀려나온다. 여기까지는 숲해설가의 대목이지만 시인은 국수나무 식당에 온 손님들을 지켜보며 말할 뿐이다. 어쩌면 시는 혼잣소리 같지만 널리 울려나가는 무지개 같다. 언젠가는 이 동시집을 들고 제주를 걸어보고 싶다. 굳이 시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까닭은 없지만(그런다고 해도 그는 멀찍이 가 있기에) 일종의 문학기행을 해보고 싶다.

 

백록담이 보고 싶어

여기까지 올라왔지.

 

조금만 올라가면

백록담인데

여기서 그냥 뭉게구름이 되었지.

 

먼벌치에서

이렇게 널 볼 거야.

 

현택훈, <선작지왓 귀룽나무>

 

아, 나는 게을러 터져서 궁둥이에 된불이라도 맞은 것처럼 고작 쓴다는 것이 뱀다리 붙은 시였을 뿐인데, 시인은 이렇게 구름나무(귀룽나무)가 되어 이렇게 말하면 되지! 하고 말해놓고 벌써 내려가고 없으니! 신출귀몰한 것 같지만 제주 시인들 대부분이 그런 것 같다. 어느 곳에서나 깃들어 사는 나무와 벌레와 미기후(복숭아뼈 아래의 날씨?)에 알맞는 시인. 어느새 시인은 비파나무에 가 있으니 또 얼른 따라갈 뿐이다.

 

 비파 씨앗을 뱉으면 다음 날 그곳에 새끼손가락 같은 싹이 돋았다. 생이*들이 찾아와 그늘을 묻히고 날아갔다. 가끔 바람이 들어와 머물다 갔고, ㄷ.ㄹ벵이 식구 세들어 살았다. 키가 훤칠하고 눈매 고운 비파나무가 그곳에 살았다.

 할아버지가 심었다는 비파나무에 재열이네*가 살았다. 재열이는 작고 푸른 악기를 둘러맸다. 햇살이 여름 피아노를 연주했다. 밥주리*도 강셍이*도 비파나무 주윌 감장돌았다* 한낮의 연주를 들으며 낮잠을 자는 비파나무가 그곳에 살았다.

 밤이면 별들이 먼먼 길을 가다 쉬기도 했다. 별은 비파나무 여러 나뭇가지 위에서 고갤 움직였다. 할아버지 없어도 낭썹*이 푸르렀고, 별이 벨롱벨롱* 울면 바람소리를 내며 잠자는 비파나무가 그 집에 살았다.

 

현택훈, <비파나무의 집>

 

(차례대로 주를 달아놓은 것을 알리면 "생이:새, *달팽이를 말하는 아래 *는 여기서는 바꿀 수 없어 잘못 표기한 잘못 이해 바람.) 재열:매미, 밥주리:잠자리, 강셍이:강아지, 감장돌았다:맴돌았다, 낭썹:나뭇잎, 벨롱벨롱: 반짝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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