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이렇게 어느 장을 펼쳐도 그 둘의 약속과 길이 보이는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이렇게 살피며 걷는 것임을 시로 보여주고 있다.
봄날 점심시간
국수나무 식당에
손님들이 가득해요.
알락하늘소는
단골이고,
호리병벌은
아예 그릇에
얼굴을 묻고 있네요.
늦잠 자다
뒤늦게 도착한
꽃무지가 허둥대며
국수나무 꽃에 날아드네요.
하얗게 꽃 핀
숲속 국수나무 식당.
현택훈, <국수나무 식당>
국수나무 가지 속을 나뭇가지로 밀면 진짜 국수처럼 밀려나온다. 여기까지는 숲해설가의 대목이지만 시인은 국수나무 식당에 온 손님들을 지켜보며 말할 뿐이다. 어쩌면 시는 혼잣소리 같지만 널리 울려나가는 무지개 같다. 언젠가는 이 동시집을 들고 제주를 걸어보고 싶다. 굳이 시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까닭은 없지만(그런다고 해도 그는 멀찍이 가 있기에) 일종의 문학기행을 해보고 싶다.
백록담이 보고 싶어
여기까지 올라왔지.
조금만 올라가면
백록담인데
여기서 그냥 뭉게구름이 되었지.
먼벌치에서
이렇게 널 볼 거야.
현택훈, <선작지왓 귀룽나무>
아, 나는 게을러 터져서 궁둥이에 된불이라도 맞은 것처럼 고작 쓴다는 것이 뱀다리 붙은 시였을 뿐인데, 시인은 이렇게 구름나무(귀룽나무)가 되어 이렇게 말하면 되지! 하고 말해놓고 벌써 내려가고 없으니! 신출귀몰한 것 같지만 제주 시인들 대부분이 그런 것 같다. 어느 곳에서나 깃들어 사는 나무와 벌레와 미기후(복숭아뼈 아래의 날씨?)에 알맞는 시인. 어느새 시인은 비파나무에 가 있으니 또 얼른 따라갈 뿐이다.
비파 씨앗을 뱉으면 다음 날 그곳에 새끼손가락 같은 싹이 돋았다. 생이*들이 찾아와 그늘을 묻히고 날아갔다. 가끔 바람이 들어와 머물다 갔고, ㄷ.ㄹ벵이 식구 세들어 살았다. 키가 훤칠하고 눈매 고운 비파나무가 그곳에 살았다.
할아버지가 심었다는 비파나무에 재열이네*가 살았다. 재열이는 작고 푸른 악기를 둘러맸다. 햇살이 여름 피아노를 연주했다. 밥주리*도 강셍이*도 비파나무 주윌 감장돌았다* 한낮의 연주를 들으며 낮잠을 자는 비파나무가 그곳에 살았다.
밤이면 별들이 먼먼 길을 가다 쉬기도 했다. 별은 비파나무 여러 나뭇가지 위에서 고갤 움직였다. 할아버지 없어도 낭썹*이 푸르렀고, 별이 벨롱벨롱* 울면 바람소리를 내며 잠자는 비파나무가 그 집에 살았다.
현택훈, <비파나무의 집>
(차례대로 주를 달아놓은 것을 알리면 "생이:새, *달팽이를 말하는 아래 *는 여기서는 바꿀 수 없어 잘못 표기한 잘못 이해 바람.) 재열:매미, 밥주리:잠자리, 강셍이:강아지, 감장돌았다:맴돌았다, 낭썹:나뭇잎, 벨롱벨롱: 반짝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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