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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는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관능적인 공간이다

책 속 한 문장, 또는 장소

by 참도깨비 2022. 7. 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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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독자, 나는 그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를 찾아나서야 한다(나는 그를 꼬여야/유혹해야 한다). 그때 즐김의 공간이 생겨난다. 내게 필요한 것은 타자의 '인간'이 아니라 공간이다. 욕망의 변증법, 예측불허의 즐김이 가능한 그런 공간."

 

텍스트란 말은 어렵게 다가오지만 바르트의 텍스트는 작가와 독자가 서로 찾아 만나야 할, 구체적이고도 관능적인 만남의 공간이다. 독자 또는 작가는 마치 바람둥이처럼 나의 그 사람을 찾아 경이롭고도 소중한 욕망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므로 글을 읽는다는 것, 또는 쓴다는 것은 사랑에서와 마찬가지로 결합에의 꿈을 실현시켜 준다. 바르트의 텍스트는 욕망의 대한, 보다 정확히 말하면 변태의 변증법 속에 사로잡힌 대상이다. 이런 글읽기/글쓰기의 관능적인 성격에 대해 주브는 다음과같이 설명한다. 독서란 그 자체로서 구조화의 행위이고 이 구조화의 근거는 바로 육체다. 즉 독자를 개인적이고도 개별체적인 주체로 정의하게 하는 것은 하나의 사상이 아닌 바로 육체이다. 그러므로 텍스트의 즐거움은, 비록 그것이 문화에 연유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우선은 각 주체의 육체에서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주체의 개인적이고도 주관적인 일련의 접촉이나 성찰을 통해서만 비로소 작품의 문화적 양상이 독자에게, 독자의 특이한 욕망 속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의미 과정의 수용은 이렇듯 우리를 주조한 문화보다는 개별적인 육체의 움직임과 더 깊은 관계를 맺게 한다. - 편역자 김희영

 

덧붙이는 말 - 우리가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롤랑 바르트는 아마추어를 강조하기도 한다. 글쓰기가 전공자의 분야와 독자로 나뉘듯 음악 연주자와 청중으로 나뉘었을 때 진정한 텍스트의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즐거움이 바로 그런 것이다. 예측 불허의 즐김이 가능한 공간인 것이다. 문학에서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것처럼 반복되는 텍스트는 사실 새로울 것 없는 재미없는 부추김과 소비의 패턴밖에 없다고 한다. 책읽기의 즐거움이 저자와의 예측불허함 속에서 이루어지듯이 책읽기는 유행과 시대를 좇기보다 고전이나 현대까지 진정한 힐링으로 이어지려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삶의 글쓰기 또한 바로 그러한 연유에서 나온 말이다. 도서관의 책들이 묻고 있는 것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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