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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자신들의 바로 그 공포에 의해 악을 낳는 약한 개인들의 무리로 이루어져 있다

책 속 한 문장, 또는 장소

by 참도깨비 2022. 9. 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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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성인은 그저 자연적이고 오만한 권력의 자아에 대고 오직 배척! 배척!을 외치고, 모든 권력층과 지배층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려 하면서, 민중은 가난한, 오, 그토록 가난한 상태로 내버려두는 일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아무리 돈이 많다 한들 가장 절대적인 민주주의에서만큼 절대적으로 삶이 빈곤해지는 곳은 없지만, 그래도 모든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 사는 민중이 그렇듯 이들[레닌 체제하의 민중] 역시 가난하고, 가난하고, 가난하다. 

 이 공동체는 비인간적이고, 인간 이하다. 피도 눈물도 없이 비정한 폭군으로 인해 이 공동체는 가장 위험해진다. 미국이나 스위스 같은 민주주의 체제조차도 링컨처럼 일종의 진정한 귀족이라 할 수 있을 영웅에 대한 요청을 받고 오랫동안 이에 대응하게 될 터이니, 인간 내면의 귀족적 본능은 너무나 강력한 것이다. 그러나 영웅적이고 진정 귀족적인 요청에 답하려는 모든 민주주의 체제의 열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약해진다. 역사 전체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일종의 앙심을 품은 채 그 영웅적 호소에 대해 등을 돌린다. 비정하게 해코지하는, 그래서 사악한, 범속한 권력을 휘두르는 그들은 오직 범속함에 대한 요청에만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열등하고 심지어 저열한 정치인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용감한 이들이 모이면 귀족정이 된다. '너는-하지-말라'의 민주주의는 약자들의 집합이게 마련이다. 뒤이어 그 성스러운 '민중의 의지'는 그 어떤 폭군의 의지보다 더 맹목적이고 더 저열하며 더 위험한 것으로 변한다. 민중의 의지가 약자로 이루어진 다중이 가진 취약성의 총합이 될 때, 그때가 바로 그곳에서 도망쳐야 할 때이다.

 그때가 바로 오늘이다, 사회는 공포에 사로잡혀 자신들을 가능한 모든 상상적 악으로부터 보호하려 애쓰는, 자신들의 바로 그 공포에 의해 악을 낳는 약한 개인들의 무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끝없고도 비열한 '너는-하지 -말라'에 종속된 오늘날의 기독교 공동체이다. 이것이 기독교 교리가 현실에서 작동해온 방식이다."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아포칼립스>(도서출판 b)

 

 D.H 로렌스로만 알았던 소설가 로렌스가 '종말의 계시록'에 대한 탐구를 기록한 책의 한 문장이다. 인간 본성을 무시한 종교 권력이 만들어온 지금의 역사를 비유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한 책이다.재생과 생명, 삶의 에너지, 야생적 자유를 소설을 주로 썼던 로렌스의 작가 정신이 지상의 파괴와 절멸 이후 천국을 대비해야 한다는 「요한계시록」에 정통으로 맞서는 비판이기에 더욱 흥미롭다. 어쩌면 종교를 떠나 요즘 정치 현실을 에둘러 말해주는 책이기도 하여 다시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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