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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대신 '천천히'와 '안전하게'를 지향해야 한다

책 속 한 문장, 또는 장소

by 참도깨비 2022. 12. 2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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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점도 손님도 배달 라이더도 모두 "빨리 빨리"를  욕망한다. 그리고 배달 어플은 그 '빨리 빨리'에 대한 묙망을 부추기고, 이용한다. 배달 도착 예정 시간을 산출하는 AI는 빅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데, 배달 라이더들이 원래 20분 걸리는 길을 15분 만에 가기 시작하면 AI는 그 경로를 이제 15분 코스로 인식한다. 교통 상황과 날씨 등 다양한 변수는 고려하지 않는다. 라이더들은 그렇게 AI가 단축시킨 시간 내에 배달을 완수해야만 한다. 라이더들이 빠르게 달릴수록 AI는 더 짧은 시간 안에 배달하라 명령하고, 결국 라이더들은 더 빨리, 더 더 빨리 달릴 수밖에 없게 되는 악순환인 것이다. 

 

 이 나쁜 사슬을 끊으려면 음식점과 손님과 라이더 모두 '빨리' 대신 '천천히'와 '안전하게'를 지향해야 한다. 다행히 조금씩 변화하는 게 보인다. 음식을 받아 갈 때 점주나 종업원이 "안전 운전 하세요"라고 당부하고, 손님도 요청 사항에 '천천히, 조심히 와 주세요'를 입력한다. 라이더들도 교통 법규를 준수해 배달 문화를 바꾸는 자정 노력을 하는 중이다. 그러니 '딸배'라고 너무 욕하지 말자. 비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쳐도 당신의 소중한 치킨과 피자를 싣고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딸배를 위한 변명> 중에서

 

“다 와서 좀 헤맸어요. 찾기가 너무 힘들어서.”라고 말하는 내게 손님은 “이거 단건 배달 아닌가요? 어플로 보니까 박달동 갔다가 오신 것 같던데,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항의했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 일 이후 나는 묶음 배달을 완전히 포기했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치킨에 대한 순정으로, 피자에 대한 사랑으로, 수제버거에 대한 로망으로 배달이 오기만을 설레어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한 집만 가자. 그게 덜 위험하고, 나도 마음 편하다. 나는 고객의 ‘설렘’을 배달하는 사람이다.
- (「한 번에 한 집만」)

 

이병철은 시인이자 문학평론을 하며 대학교 시간 강사로 일하며 배달 라이더를 한다. 시간 강사 봉급과 원고료만으로는 쪼들려서 투잡을 하고 있다. 헤어진 연인과 누볐던 안양 골목 골목을 2006년식 49cc 스쿠터로 달리고 있다. 가벼운 단상이라지만 에먼글면한 삶이 그대로 숨어 있는 명문들이다. 기죽지 않는 유쾌함으로 버티는 이병철 시인의 글을 읽어보면 창문 밖으로 들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다르게 들린다. 그리고 비가 억수같이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는 좋아하는 치킨 주문마저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음식을 싣고 오는 배달 분투기를 그의 또다른 문학으로 여기면 사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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