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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를 떠나보내며

책 속 한 문장, 또는 장소

by 참도깨비 2023. 3. 2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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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하나의 소설에서 아무리 황당무계한 공상이 펼쳐진다 해도 그 창작의 중심에 위치하는 작가의 의식은 그가 놓인 움직일 수 없는 현실 생활에 근거해 자기를 초월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작가에게 있어 상상력의 행사는 몽환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현실적인, 지금 일본의 1960년대와 관련해 그것을 에워싼 채 가차 없이 침식해오는 세계의 현실 전체와 관련된 삶의 뿌리를 향해 스스로 파고들어가는 행위이다. - 오에 겐자부로,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문학과지성사)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3월 3일 타계했다. 1935년 일본 시코쿠 에히메현에서 태어나 1954년 도쿄대학 불문과 재학 중에 단편소설 「기묘한 아르바이트」(1957)를 발표했고 단편 「사육」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전후 일본의 암울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방황과 좌절을 그렸으녀 60년대 미일안보조약 재개정 반대 시위와 학생운동을 비롯한 진보 성향의 작품을 썼다.  뇌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들 오에 히카리를 자신의 소설 속 어린 자아로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폭력 앞에 놓인 인간 성찰과 함께 사회적인 약자와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기를 썼다. 소설 이외에도 르포르타주인 『히로시마 노트』(핵의 위험성을 넘어 군국주의를 꿈꾸는 일본 정보를 비판하고 한국의 위안부 문제에도 적극적인 관심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키나와 노트』 등도 발표하였는데 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발전하지 못한 일본 민주주의의  과제들을 다뤘다. 한편 그는 양심과 실천을 함께 한 소설가로서 원전 문제와 한일 문제에도 적극 참여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2차 집권기인 2015년 3월 연세대에서 열린 '연세-김대중 세계미래포럼'에 참가해 "일본은 아무리 사죄해도 충분하지 않을 만큼 막대한 범죄를 한국에 저질렀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인들에게 일본은 충분히 사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한국에서 사랑받는 작가이기도 했다. 일왕제와 군국주의를 비판해온 만큼 일왕의 문화훈장을 거부하며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권위와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겨 양심 있는 작가이기도 했다.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에 이어 장편소설 『익사』(2009), 단편집 『오에 겐자부로 자선 단편』(2014) 등을 발표하였다.  

 

 

 

 

 

2009년작인 <익사>는 늙은 소설가의 회고조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데 아버지의 익사 사건을 기점으로 왜곡된 남성성으로부터 일본의 근현대사이자 세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군국주의와 그에 반동한 극좌 운동이 사회의 벽에 부딪혀 다시 우경화된 현실이 그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소설을 말하면서 아버지를 부정하면서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 소설인 셈이다. 아버지와 소설가는 서로를 부정하면서 닮아가는 남성성 그 자체이다. '숲의 기묘함'을 말한 어머니의 하이쿠에서 발견한 것처럼 잃어버린 과거에서 건져낸 회한과 구원이기도 하다. 

 

 

 

중중 장애아로 태어난 아들을 둔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시적 언어로 현실과 신화가 혼재된 세계를 창조하고, 곤경에 처한 현대인의 모습을 담아 당혹스러운 그림을 완성했다”고 할 만큼 상처와 분노를 통해 인간애와 공존으로 승화시킨 대표작이다. 27세의 학원 강사 버드가 결혼 후 태어난 뇌 장애 아이로 인해  절망과 일탈을 겪는 이야기가 전후 일본의 출구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1963년 6월 장남 히카리가 뇌에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일을 계기로 쓴 것이기도 하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스웨덴어 등 10개 국어로 번역되어 실질적인 대표작이면서 노벨문학상을 타게 된 결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거침없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충격적이고 외설스럽고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을 요설체로 떠들어 대던 젊은 작가가 처음으로 자신의 체험을 말하는 방식이다. 

 

오에 겐자부로 등단 50주년 기념 소설이다. 일흔이 넘은 노인이 화자가 되어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나이 듦과 죽음,  그로 인한 삶의 무게를 회상하며 그려가는 이야기다. 대학 친구이자 뛰어난 영화제작자인 고모리가 왕년의 아역 스타였던 사쿠라와 함께 찾아와 영화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부탁하는데 같이 온 사쿠라를 통해 에드거 앨런 포의  '애너벨 리'를 떠올리게 되는데  시나리오 작업 및 영화 제작 과정을 담은 ‘영화 소설’로도 불린다. <익사>가 연극과 함께 하듯이 일종의 협업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독일 작가 클라이스트의 소설 『미하엘 콜하스의 운명』에 나오는 민중 봉기를 영화로 제작하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중심 인물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식에 새로운 치유로 가는 소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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