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딱하고 허름하고 후미진 구석에 깃든 마음을 시로 보듬는 시인 조하연의 동시집이 새로 나왔다. '방학이면//난/쉼표//엄마는/빨리 감기//형은/일시정지//서로 다른 꿈을 꾼다.'(<동상이몽>)는 식구을 사이에서 정 많고 그래서 눈물 많은 마음을 담았다. 그 마음은 동시라는 틀에 묶이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말하듯이 따스하게 스며든다.
유통 기한 얼마 안 남은
국수나 삶아 먹자던 엄마
국수 가닥이 깡말라 누워있는
할머니 팔 다리 같다며
물이 끓고 끓는데도
허연 국수만 어루만져
그날
우리는
호록호록 소리도 없이
오래 길게 저녁을 걸었어
<긴 저녁> 전문
다른 시(<틈>)에서 몇 달째 누워있는 아빠와 한숨 쉬는 엄마 사이에서 ;눈치 없이 배고픈 나'가 보여주는 식구들의 모습이 <폭풍전야>에서 보듯 짠하게 다가온다. '밥 한술 뜨다 말고 나간 아빠와 '드라마 끝나가도록/식탁 앞에 앉았'는 엄마를 보며 '형이랑 나랑은 착해져서 숙제 다 해놓고' 자는 척하는 모습에서 어린 마음에 깊이 든 슬픔을 보기도 한다. 동시를 쓰는 어른의 마음이 아니라 어린 '나'의 마음을 잘 부려놓고 있다. '얼마든지/그럴 수 있는 건데'(<그럴 수 있는 걸>) 하고 식구를 넘어 모든 사람의 마음살이를 위무하는 힘이 있다. 동시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제는 이모가
봉숭아 꽃물 들여준다
물든
손톱을 뜯으니
씁씁한 눈물 맛
쓰르르 쓰다
주황 꽃물
눈물에도 색이 있었다
<엄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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