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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하늘의 별을 따려 했을까-음성 한일중 3학년 시

시와 함께한 나날

by 참도깨비 2024. 1. 2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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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하늘의 별을 따려 했을까

음성 한일중 3학년 시

 

겨울방학과 함께 졸업을 앞둔 3학년들에게 D-13은 가리키기만 해도 절로 비명이 나왔다. 하나같이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간다는 것이 아쉽고 그동안의 일들이 눈에 밟히는 듯한 얼굴들이다. 시가 눈에 들어올까 싶었지만 이 시점에서 가장 간절한 말 또한 시이기에 함께 보기 시를 읽거나 관심사 위주로 모두의 말을 들어보고 시를 쓰고 다듬고 고쳐서 문집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1, 2반을 번갈아 가며 들어가 시 이야기를 하고 쓰고 고치고 다시 읽어주다 보니 짧은 시간이나마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인생은 자기 마음이다

인생을 재미있게 살고 싶으면

재미있게 사는 거고

 

인생을 게임처럼 살고 싶으면

게임처럼 사는 거고

 

인생을 규칙적으로 살고 싶으면

규칙적으로 사는 거지만

인생은 한 번이고 목숨도 한 개이다

 

이금택(3-1), <인생>

 

금택이가 대뜸 인생을 들고 나왔다. 흔한 제목이기도 하다. 아직 인생을 말할 만큼 어른이 된 것도 아니지만 한 번 폼나게 말해보고 싶은 것이다. 달리 말하면 재밌게 즐기며 살고 싶은 마음이지만 걸리는 게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고, 게임을 실컷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지만 학교에 꼬박꼬박 다녀야 하고 공부도 해서 뭔가를 이뤄야 한다. 그래서 인생은 한 번이고 목숨도 한 개라는 무거운 표지판을 만나 급정거하듯 쓴 것 같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자기 마음인 인생을 어떻게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한 번뿐이고 한 개뿐이라는 설정으로 마무리했다. 거꾸로 읽으면 인생은 한 번이고 목숨도 한 개이지만 자기 마음이 중요하니 재미있고 게임처럼 단계를 밟아가듯 규칙적으로 사는 것이 인생이라면 어떨까 싶다. 살아보니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니 이렇게 못 박듯이 말하는 것보다 중학교 3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짚어 생각하고 썼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내가 태어날 때 고통받았던 엄마

내가 말 안 들을 때 힘들어 고통받던 엄마

사춘기인 나랑 싸워서 고통받았던 엄마

힘들어서 병이 생겨 아파서 고통받던 엄마

엄마의 손을 보면 그 흔적이

쭈글쭈글한 주름으로 남아 있다

그 흔적을 보면

엄마에게 미안하고 너무 미안하다

엄마 사랑해요 죄송해요

 

이성민(3-1), <엄마>

 

지금까지 살아오며

엄마와 다툰 적도 있었고

엄마에게 혼난 적도 있었다

 

엄마에게 혼날 땐 화도 나고 힘도 들었다

엄마는 나를 위한 마음이었겠지

 

항상 혼난 것은 아니었다

그 엄마의 혼냄은 나를 사랑하기에

그것은 혼낸 것이 아닌

나에게 주는 사랑이었던 것이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니 항상 완벽할 순 없다

엄마도 사람이기에 실수라는 것을 한다

 

나는 왜 어머니의 사랑을 항상 부정적으로

받아드렸을까? 왜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이제부터 내가 엄마의 힘듦의 아들이 아닌

힘듦을 도우는 아들이 되어야겠다

 

김한중(3-1), <마음, 사랑>

 

성민이는 보기 시로 읽어준 어머니 시 때문인지 기특하게 엄마를 떠올리며 썼다. ‘사춘기인 나랑 싸워서 고통받았던 날이 말하지 않아도 주마등처럼 떠오를 것 같다. 나무로 치면 옹이 구간처럼 남아 있는 단절 구간을 다 말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막 그 구간을 빠져나와 어렵게 내놓는 말이라 시를 쓴 성민이나 엄마에게 특별한 문장이 될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며 자신에 대입해 볼 친구들에게도 특별한 시라 할 수 있다. 자기 고백이라 해서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다. 시이니까 감응과 감동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이어서 한중이도 고백을 했다. 모두가 처음이어서 실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깨달음에 다다른 것이다. 서로 힘든 시기를 지나오니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감정의 골을 훑어보면 서투르기만 해서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상처 주는 말로 흘려버렸을 것이다.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모자라 서로의 힘듦을 알아차리지 않았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매일매일이 달라지는

급식

 

하루하루가 새로운

도전이다

 

맛있는 급식도 있을 수 있고

맛없는 급식도 있을 수 있다

 

언제 내 인생에서

급식이 끝날까?

 

대답은 모른다이다

 

이은찬(3-1), <급식>

 

그에 비해서 은찬이는 단순하게 배고픈 시간을 시로 썼다. 급식은 날마다 나온다, 이름이 그럴싸해도 맛있고 맛없는 것은 그날 따라 다르다. 그런데 은찬이는 조금 재미있게 접근해서 마무리했다. ‘급식 인생이란 말이 어울릴 만큼 내 인생에서 급식은 언제 끝날까?’하고 썼다. 졸업하면 고등학교 급식이 기다리고 있고, 그다음은 가늠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냥 끝내지 않고 물음표를 던지는 것으로 시가 달라질 수 있다.

 

3학년엔 괴물이 존재한다

그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3학년엔 화목이 존재한다

그것은 괴물이 막을 수 있다

 

임경훈(3-1), <괴물/화목>

 

경훈이도 의미심장한 말을 꺼내 들었다. 우리 반에는 괴물과 화목이 있다. 여기서 화목은 和睦이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괴물과 화목이 창과 방패처럼 있다는 것일까? 길게 쓰지는 못하고 이렇게 쓰니 알아서 느껴보라는 듯이 간결하게 써서 급식만큼이나 각인이 된다.

 

내가 사는 행성은

물과 태양만이 있다

행성의 이름은 태극

 

근처에는 건, , , 이라는 행성이

태극 주위를 돌고 있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보인다

태극도 무언가의 근처에서

돌고 있다는 것을

 

나는 성장한 뒤에

비좁은 태극을 벗어나서

은하를 여행하고 싶다

 

전 세계의 나라를 돌아본 뒤에

배운 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김민재(3-1), <천동설>

다들 만만치 않다. 민재의 <천동설>만 봐도 그렇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뀐 지가 언제인데, 잘못 쓴 게 아니냐고 묻겠지만 민재의 천동설은 어디까지나 천동설을 주장할 때처럼 지구가 중심이고 모든 게 지구 둘레를 돈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가늠하게 해준다. 왜 천동설을 주장했는지가 천동설을 뒤엎는 말로 이어진다. ‘태극은 우주 만물이 생겨나고 스러지는 이치를 담은 조화와 상생이라는 심오한 뜻이 담긴 말이지만 민재는 건, , , 이로 둘러싸인 태극(), 그러니까 태극도 무언가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걸 알지만 이 나라 땅덩어리로 대표되는 공간에서 벗어나 세계로 다니면서 알고 싶다는 것이다. 무엇을 배워서 알려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에서 던져보는 출사표 같은 것이다. 맞다. 그렇게 세계로 뻗어가서 먼 훗날 들어와 태극의 이치를 실행해도 좋다. 그때 가면 태극의 이치가 새로 보이고 움직이게 될 테니까.

 

생활을 하면서 맨손으로 바위를 깨는 일도 있었고

맨몸으로 하늘을 날고 싶어 할 때도 있었다

 

친구 때문에 행복한 적도 많았지만

때론 상처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 덕에 교훈을 얻은 적도 많았다

 

나는 왜 하늘의 별을 따려고 했을까

나는 왜 원하는 것이 많았을까.....

 

나는 아마 하늘의 별을 따진 않았어도

나는 소중한 친구를 얻었을 것이다

 

친구는 동반자이며 인생을 뉘우치게 해주는

도우미 같은 존재이다

 

김한중(3-1), <친구의 영향>

 

한중이도 위대한 발견을 했다. 앞의 <천동설>처럼 왜 하늘의 별을 따려고만 했을까 하고 돌아보니 친구가 있었음을 재발견한 것이다. 고쳐 쓰기 전까지는 흔한 친구론에 지나지 않았는데, 졸업을 앞두고 다시 생각해 보니 친구의 영향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행복상처’, ‘교훈을 넘은 친구의 영향이니 그간의 3년이 뜻깊게 다가온다. 번지르르한 말보다 훨씬 솔직하게 감겨오는 말이 되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흘러나오는 진짜 말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다.

 

사랑이 다가오니

행복도 다가오네

 

사랑이 떠나가니

슬픔이 다가오네

 

사랑이 없으니

쓸쓸함만이 남아 있네

 

이영석(3-1). <사랑>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감정이니까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사람들의 대답은 대부분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행복이란 게 하나만 있으면 채워질까?

아니 행복은 한 개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행복이 한가지면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을 테니

 

이영석, <행복>

 

마음에 이어 많이 나오는 말 가운데 행복사랑이 있다. ‘행복사랑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 텐데, 때가 되면 그것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일까? 영석이의 시를 따라 들어가면 그런 강요가 만들어낸 압박 같은 것이 느껴진다. ‘공부는 잘 되냐고 물어오듯이 느닷없이 행복하십니까?” 하고 물어오는 것이다. 먼저 영석이가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의 뜻이 아니라 연애 감정을 부추기는 그 언저리의 것이라 봐야 할 것 같다. 누군가 다가왔다가 가버렸을 때의 기분이 행복슬픔’, ‘쓸쓸함으로 뭉쳐있는 듯하다. 그렇더라는 말 같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떨까 읽으니 하나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다.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감정이 행복이라고 했다가 하나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니 처음부터 공허한 질문이었다고 봐야 할까? 누구나 다르게 느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마치 행복의 기준이 있는 것처럼 강요하는 것도 모순이다. 어쩌면 행복이라는 것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좇아 채워지지 않는 물음만 던지고 서로를 옭아매는 것은 아닐까? 좀 더 행복의 실체에 대해 말해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더라면 공허함의 실체, 그러니까 지금에야 행복을 꺼낸 영석이의 진짜 마음을 보았을 테지만 이런 질문만으로도 다음 시가 기대될 만큼 잘 썼다.

 

체력 4700 방어력 329

마저 201인 챔피언이

 

저지불가, 쉴드, 벽 넘기는 거 있고

에어본 있고, 심지어 쿨 타임은 1

밖에 안되고 마나는 15 들고

 

W는 심지어 변신하면 쿨 초기화에다가

패시브는 고정 피해가 들어간다

 

방 마저를 올리면 올릴수록

스킬 가속이 생기고 Q에 스킬 가속이

생기고 스킬 속도가 있어 W

그 이익- 으아아아앗

 

조태환(3-1), <크산테>

 

모든 세상이 날 억까 한다

하는 일마다 안 풀리고

짜증만 난다

 

내가 보는 세상이 부정적으로만

보이며 인생이 점점 피폐해져 간다

 

그런 삶에 유일한 낙

랄로를 보는 것이다

 

조태환(3-1), <억까>

 

앞선 친구들에 비해 태환이는 게임이 전부인 것 같다. 거의 대부분이 레벨에 관계 없이 게임에 빠져 있지만 시까지 쓰는 걸 보면 유일한 낙 그대로이다. ‘크산테는 롤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이고 기호들은 그에게 주어진 능력치다. 뒤에 오는 <억까>처럼 풀리는 일이 없는 세상에서 게임은 대단한 취미이자 킬링타임에 맞아떨어지는 놀이다. 한밤중에 상대와 교신하며 큰소리로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면 어른들이 했던 PC통신 생각이 난다. 저마다 캐릭터를 드러내지 않으며 한 사람들이 쓰던 대화창이 지금의 게임 세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게임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모든 세상이 날 억까(억지로 까이다) 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게임은 경계 대상이기 때문에 게임을 못하게 하거나 시간이 원 없이 주어지지 않으면 다른 일마저 풀리지 않고 부정적으로 피폐해져 가는 자신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삶에 유일한 낙은 게이머 랄로를 보며 대리만족하는 길일까? 이렇게 시 쓰기 시간에 지금의 상태를 말하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앞선 엄마에게 바치는(?) 시처럼 이 시의 독자 또한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사실 억까란 말이 그리 부정적인 말만이 아니라고 하니 랄로를 보며 자신의 세계를 재구성해보고 게임식으로라도 풀어가는 것은 어떨까 싶다.

 

한평생 우리를 위해 살아오신 할아버지

이젠 편히 쉬시길

 

늘 근심과 걱정으로 편히 못 주무신 할아버지

이젠 근심과 걱정 없이 편히 주무시길

 

늘 우리가 우선이셨던 할아버지

나의 우선도 할아버지라는 걸 아셨으면

 

늘 느껴온 익숙하지만 이젠 못 느끼는

그 온기 다시 한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김용건(3-1), <할아버지>

 

용건이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다. 예상했던 대로 부모님보다 할아버지의 세심한 손길을 받고 자란 덕분에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단박에 할아버지에 대해 썼다. 많은 부분을 생략한 시이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할아버지의 빈 자리가 얼마나 큰지, 그때는 몰랐지만 할아버지의 걱정과 근심속에서 지냈음을, 익숙함에 묻어버린, 말 한 마디의 소중함을 온기에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도 처음에는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과 같아는 식의 의례적인 표현으로 썼는데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할아버지의 존재를 떠올려보고 쓰자 했더니 달라졌다. 뒤늦게라도 못다 한 마음을 쓸 수 있었으니 뭉클해진다.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박지호(3-1), <작심삼일>

 

지호는 정말 작심삼일에 맞게 썼다. 간결한 시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뭘 더 말하느냐고 툭 던진 말처럼, 되풀이하는 작심삼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굳이 길게 내용을 채워서 쓸 것도 없다. 이런 순발력도 필요한 것이 시다.

 

상상하면 뭐든지 다 한다

상상하면 행복하다

 

상상하면 주르르도 본다

벌써부터 행복하다 하하

 

상상하면 고세구도 본다

기대된다

 

상상은 좋다

 

박수명(3-1), <상상>

 

검색해 보니 이세상아이돌이란 가상세계(?)의 멤버 중 두 명이 나왔다. ‘주르르고세구. 수명이가 만들어낸 상상의 인물이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직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상상의 인물에 머물러 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뭐라도 써야 하니 순발력을 발휘하여 만들어냈다.

 

그린다

추운 겨울 끝을 지나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

기다리던 꽃과 나무가 활짝 펴 예뻤던

봄을 그린다

 

그린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고

땀이 줄줄 흘러 더웠던

여름을 그린다

 

그린다

나무에 붙어있던

낙엽이 다 떨어지고

겨울을 준비하던

가을을 그린다

 

그린다

눈이 소복하게 쌓여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고

눈이 내리는 게 예뻤던

겨울을 그린다

 

장한별(3-1), <계절을 그린다>

 

덥고 습한 우리의 여름

화가 나지만 때론 행복하고

 

비로 인해 옷이 비 범벅이 되었지만

친구들과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것이 행복하고

 

하복이 땀으로 범벅이 될 만큼 더워도

에어컨 하나면 충분히 행복한 그 계절은 여름이었다

 

유경우(3-1), <여름>

 

흔히 , 여름, 가을, 겨울을 정의하듯 쓰기 쉬운데, 그것은 자신한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떻게 왔는지에 대한 느낌이 아니다. 어리거나 나이를 들었거나 계절에 깊이 들어가 쓰려면 오감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러기 쉬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한별이는 다르게 배치했다. 계절을 그린다고 썼다. 붓이나 연필로 직접 그린다는 행위로 새로운 시를 만들어냈다. ‘그린다는 말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좀 더 적극적인 대상물로 만든 것이다. 뭘 그리는지 구체적이고 자기만이 느낀 것(경우의 <여름>처럼 계절마다 진하게 남는 것이나 공감할 수 있거나 자기만이 겪었던 것)을 그렸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좋다. 어찌 지나갔나 모르게 와버린 지금에서 여유를 두고 그리는 것이니 <계절을 그리다>, <여름을 그리다>의 제목에 맞게 다른 시가 되었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한다

이제는 용건이를 보기 힘들다

그래도 나는 연락할 거다

나에게 잘 해주었기 때문에

인스타 DM으로 따봉 하나 날려줄게

너는 까만 엄지 따봉 두 개 날려주라

너 대박 나면 나한테 먼저 연락하기다?

 

이민선(3-1), <김용건>

 

나는 곧 졸업인 중3이다

지금까지 당연한 이 순간도 곧 끝난다

함께 놀고 추억을 쌓은 친구들과 고등학교를 가지 못해 슬프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행복했던 건 놀고 추억을 쌓은 순간이 아니라

그 추억을 기억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것 같다

친구의 뜻과 같이 더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귄 벗이 되었으면..

 

김민종(3-1), <친구>

 

나에게 있어 진정한 친구란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이다

마치 카톡의 공유 버튼처럼

 

나에게 있어 진정한 친구란

내 말을 잘 들어줄 수 있는 친구이다

마치 가방 들어주는 아이처럼

 

나에게 있어 진정한 친구란 재밌게

놀 수 있는 친구이다

마치 뽀로로와 크롱처럼

 

나는 진정한 친구와

평생을 함께 있고 싶다

마치 떼어야 뗄 수 없는 것처럼

 

박건호(3-2), <진정한 친구>

 

역시 한 자리에서 드러내놓고 시를 쓰다 보니 졸업 시즌에 맞는 시도 나왔다. 민선이는 용건이에게 대놓고 쓰는 것이다. 무엇보다 대박 나면이란 말에서 친구에게 거는 기대와 믿음이 진하게 느껴진다. ‘대박이 무엇일지 모르지만 지금 품고 있는 이라 넘겨짚어 생각해볼 수 있기에 둘 사이의 애틋함이 느껴진다.

이어지는 민종이의 시도 이때 아니고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드러냈다. ‘함께 놀고 추억을 쌓은 순간도 좋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에 친구들에 대한 감정이 더 뭉클하게 살아난다. 그것은 뒤에 오는 뜻을 같이 하고 오래 오래기억하는 것과 얼크러지면서 졸업식에 읽어야 할 좋은 시가 된 셈이다.

그에 비해서 건호의 친구론은 진지한 것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것 같다. 재미있게 잘 놀아준 친구들까지는 좋았는데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와 가방을 들어주는 친구 대목에서는 앞에서 말한 공유란 것이 단순한 좋아요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오해를 불러온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그렇게까지 봉사할 수 있는 게 친구이고 재미 있는 일이지 않느냐고 넉살 좋게 말하고 있을 뿐이라고 믿고 싶다.

 

치킨,

피자,

치즈,

피구,

차이코프스키,

파이,

차알리,

파김치,

두부,

비 오는 날,

두더지,

비실비실 비실이,

다안무지,

바비큐,

다람쥐,

바람,

마술,

지구,

코뿔소,

지우개,

 

송치윤(3-1), <내가 좋아하는 것들>

 

치윤이도 순발력으로 아무 말이나 쓴 것 같지만 차이코프스키비 오는 날’, ‘바람’, ‘코뿔소에 이어 지우개가 심장치 않은 배치다. 먹는 것만 밝힐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이런 감성도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불러내어 적는 것만으로도 시가 될 수 있다. 노트 한 권에 좋아하는 이름이나, 형용사, ‘이 들어가는 말이라든지, 오고 가는 길에 본 것들을 적어보면 쓴 사람이 무엇을 보고 느끼고 있는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내는 자전거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부품으로 바꾸고 페달을 돌릴 때

그 느낌은 매우 좋다

멀리 자전거를 타고 떠날 때

마음은 신났다

가끔은 힘들고 덥고 춥고

왜 타는지 모를 때

내가 원하는 부품으로 조립한

자전거를 보면 기분이 좋다

 

박민석(3-1), <자전거>

 

1반에서 자기가 좋아하고 지금 한창 빠져있는 레고’, ‘게임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민석이는 자전거 꾸미기라는 독특한 취향에 대해 썼다. 처음에는 원하는 부품으로 자기만의 자전거를 만들어 타는 재미라기보다는 남들 눈에 이상한 취미로 보일까 걱정하며 자기 취향을 부정하는 시였다. 그럴 게 뭐 있냐고, 저마다 취향은 다르지만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주니 다시 써서 좋아진 것이다. 민석이는 멀리 청주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녀온 적이 있다고 말할 만큼 자전거에 진심이기 때문에 다음에는 자전거 여행에 대한 시가 나온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 가는 중학교

기쁨 반 걱정 반

 

나는 현재 중학교 끝에 있다

또는 고등학교 앞에 있다

 

그동안 친해진 친구들과

이별하고 새로운 친구들과

만남을 갖는 설렘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

새로운 곳을 갈 설렘

이제는 준비 완료 단계

 

이정현(3-2), <설렘>

 

이번에는 2반이다. 역시 졸업을 앞두고 들떠 있었지만 1반과는 다른 개성이 느껴지는 친구들이 많다. 정현이는 설렘이라는 감정을 헤어짐보다는 새로운 만남에서 찾고 있다. 초등학교 졸업 때와는 다른 느낌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에 서 있다는 말이 진하게 다가온다. 너나없이 잘 지내는 분위기 덕분에 졸업과 새로운 학교에 대한 설렘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않지만 이별할 준비가 되어있는 만큼 D-7일을 헤아리고 있는 교실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햇빛은 쨍쨍하고

사람들은 웃고

동물들은 뛰놀고

마을은 평화롭고

나라도 평화롭다

멍청한 철덩이는

필요치 않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사람들은 울고

동물은 보이지 않고

마을은 사라지고

나라는 암울하다

멍청한 철덩이가 필요하다

 

긴 싸움 끝에 기다리는 것은

기쁨도, 평화도 아닌 후회와 암울함이다

 

김건우(3-2), <전쟁>

 

건우는 툭 튀어나온 돌부리처럼 전쟁이야기로 눈길을 끌었다.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말하는 것일까? ‘전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우리 사회 안의 일들에 대해 말하려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건우는 기쁨과 평화는 잠시 있는 화학적인 기분 같은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인지 시를 끌어가는 목소리가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동물이나 사람들 모두 평화로울 때는 쇠붙이로 대표되는 무기가 필요 없지만 비가 오고 사람이 울고 나라가 암울해지면 전쟁으로 이끌어가려는 힘들이 강해짐을 아는 것일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우만 보더라도 긴 싸움끝에 후회와 암울로 가는 전쟁 중임을, 진정 평화라는 것이 오기는 하는 것인지, 바라고 있는 것인지 모를 혼란 그 자체임을 말하려는 것 같다.

 

나는 기타 치는 너를 보며

너에게 첫눈에 반했어

기타 치는 너의 모습을 보면

네가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

너와 전화하며 등교할 때

나는 등굣길이 신나고 좋아

너와 전화할 때

너의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너무 설레

너의 목소리 또 듣고 싶다

그래서 설렘 곱빼기 먹고 싶다

 

김현중(3-2), <너에게 빠져버린 나>

 

건우가 진지하면서 현중이는 한없이 가벼우면서 진지하다고 할까, 일단 재미있다. 요즘 최고의 관심사는 연애 사업이어서 말이 나온 김에 의 마음을 사로잡을 시를 써보라고 주문했다. 친구들의 부러운 시샘을 받으며 쓰자니 부끄러워서 몇 번이나 망설이면서 고치고 다듬어서 썼는데 가 좋아할 만한 시가 되었다. 마지막 행에 부끄러움을 떨치지 못하고 설렘 곱빼기로 잘 나가는 느낌을 반감시키기 했지만 그것마저 현중이의 재미와 낙천?적인 성격을 말해주는 것 같다. 어쩌면 인기남일지도 모르기에 이렇듯 진지하게 를 사로잡을 수 있는 말 하나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감정은 숨길 수 없는 것이고 진지하게 상대에 대한 진심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종이 위의 선율

종이 위의 화합

내 손은 먹물이

종이에도 먹물이

 

선 하나에

능선 하나가

점 하나에

바위 하나가

 

물과 먹물의 만남

색은 희미해지지만

선 두 개에 하천이

점 두 개에 구름이

 

각가지 색으로

알록달록 물들면

완성되는 한 폭의 그림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가을 금강산

 

정윤우(3-2), <>

 

윤우는 수묵화를 그린다. 먹과 붓으로 구름과 바위, 산을 그린다. 여기서 은 각가지 색이라고는 하지만 농담이다. ‘알록달록은 농담 위에 오는 단풍이나 봄꽃의 색일 뿐이다. 궁금하기도 하여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표현해달라고 했더니 한 폭의 금강산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시를 썼다.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붓으로 그리는 그림밖에 없었는데 자신이 다루는 물과 먹의 선율, 조합을 느끼고 공감하게 해주었다. 스스로 자기 하는 일을 보여주고 그 일의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는 시여서 좋다.

 

옷은 나를 꾸며준다

옷은 나의 개성을 나타내준다

옷은 남 눈치 안 보고

내가 입고 입고 싶은 것을 입는

자유로운 자유권 같은 것이다

 

만약 누가 너의 옷에 대해

지적한다면 당당하게 말해라

옷은 내 마음대로 입는 것이라고

 

송욱현(3-2), <>

 

욱현이도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하다. ‘이라는 제목이 마치 자유의 상징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가온다. 누구나 입는 옷이지만, 옷에는 그 사람만이 개성과 자유로움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욱현이는 후드티를 좋아하는, 그렇다고 패션왕처럼 요란하게 입지 않고 평범한 차림인데 왜 자유권까지 말했을까. 아무래도 주위에서 너무 편하게 입는다고 지적질을 하는 바람에 이런 시까지 쓴 것 같다. 하지만 은 그 옷을 입고 있는 그 사람의 자체일 수밖에 없다.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고 를 꾸며주는 주체이기에 남의 눈치 안 보고 마음대로 입는 개성인 것이다. 그것이 없이는 벌거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광대를 무시한다

멍청하고 사람들 아래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광대의 의미를 잊었다

광대는 사람의 눈과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사람들은 광대의 고마움을 잊었지만

예비광대인 내가 상기시켜 줄 것이다

예비방송인인 내가 편견과 무시를 깨고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예비방송인인 내가 즐겁게 만들 것이다

내가 사람들을 감동시킬 것이다

자고로 광대란 모두의 마음과 눈을 움직여야 한다

자고로 광대란 울든 웃든

모두 행복하게 해야 한다

 

최주영(3-2), <광대>

 

주영이는 첫눈에도 끼가 있어 보였다. ‘이 그렇듯 자기만의 취향이 있어서 거침 없이 자신을 광대라 불렀다. 처음에는 그렇게 부르지 않고 자기만의 방송 채널을 갖고 싶다는 정도로만 말했는데, 넘쳐나는 를 좀 더 표현해달라고 했더니 몇 번을 고치고 다듬은 다음에 나는 광대다!”라는 선언이 나온 것이다. 사람들을 웃고 울리는 광대의 삶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이 편견과 무시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기에 오기가 생긴 것일까? 괜찮다고 부추겨주니 점점 확신이 생기고 자신의 꿈을 구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시금석이 되는 시로 표현했다.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광대의 삶이자 운명이라는 것을, 그러기에 편견과 무시를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장한 일인가.

 

최주영은 이상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

이상한 애니를 좋아한다

참 특이한 친구이다

나는 전혀 이해가 안 된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너무 이상하다

가장 오래된 친구인데

멀어질 필요가 있다

 

김도영(3-2), <최주영>

 

주영이의 눈빛이 결연한 데 비해 친구들은 주영이의 뜻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주영이의 이상한 취향이라고 말하는 도영이에게 서로 다른 꿈을 가진 친구에게 너무 심한 말이지 않냐고 말했더니, 꼭 그런 뜻만은 아니라고 했다. 도영이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긴 하다. 그래도 정확히 상대를 지목하고 썼으므로 주영이의 시와 함께 읽고 나니 가장 오래된 친구에게 너는 어쩔 수 없는 광대야!”하고 말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당연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그 사람만의 취향이다. 그렇다고 멀어진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더니 도영이도 알고 있다고 웃었으니 서로를 이해해 나가는 첫발이자 시의 효과이지 않을까.

 

햇빛은 쨍쨍 정현이는 벌컥벌컥

이두 삼두 조지고

광배와 하체를 조진다

그러나 조져가는 건 내 몸일 뿐

 

다음은 프로틴을 마신다

정현이처럼 벌컥벌컥

 

그다음은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먹는다

정현이처럼 많이 먹고 싶지만

그를 따라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마치 턱이 없는 정현이처럼

 

이영원(3-2), <벌크업>

 

주영이에 질세라 영원이도 개성 있고 재미있는 시를 썼다. 한참 몸만들기에 빠져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시다. 이두박근 삼두박근을 만드는 일을 조진다고 해서 친구들을 웃기게 만들었다. 몸만들기가 그만큼 쉽지 않아서 그야말로 조져야만 한다는 것인데, ‘조지다는 몸을 망치거나 그르치는 뜻이다. 요즘 쓰는 말이 그렇다. 원뜻과는 달리 벌크업을 위해 운동기구와 프로틴과 식단조절로 철저하게 쏟아붓는 열정이라는 뜻으로 바뀐 듯하다. 친구를 빗대서 미안하지만 이란 말을 잘 부려 써서 더 재미있다.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먹고 싶은 것들을 참아야 한다는 말 뒤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과 턱이 없는 몸을 빗대면서 자신의 벌크업을 강조한 것이다.

 

미지수는 알 수 없다

 

미지수는 정수이고

미지수는 양수이고

미지수는 음수이고

미지수는 O이다

 

또한 분수이고

또한 소수이다

미지수는 알 수 없기에

재미있는 것이다

 

마치 알 수 없는 우리의 미래처럼

마치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생처럼

 

박진억(3-2), <미지수>

 

진억이 시도 재미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만의 시를 쓸 줄 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지금 상태를 말하고 있어서 친구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미래는 모두에게 두렵기까지 하다. ‘인생이라고 말하면 혹시 잘못된 선택과 자신의 잘못 때문에 그르치지나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그래도 미지수가 그 알 수 없음이기에 재미있다고 말하고 있어서 좋다. 그 알 수 없음으로 빠져드는 미래인생, 아무것도 없는 시간과 공간을 채워가는 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어둠에서

불꽃이란 도움을 받는다

 

밤이라는 어둠에

모닥불이라는 불꽃

 

인생이란 어둠에

사랑이라는 불꽃

 

그런데 우리는 그 불꽃을

, 폭탄, 칼이라는 어둠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가

 

박진억(3-2), <불꽃>

 

진억이의 두 번째 시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잘 담았다. ‘불꽃이란 말은 과 조금 다르게 어떤 강력한 의지로 보인다. ‘이 불 자체이어서 무엇으로든 바뀔 수 있는 자유로운 원형이라면 불꽃은 어둠을 밝히는 모닥불이고, 인생에 있어 사랑을 만들어내는 의지의 표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자유롭고 무엇보다 어둠을 밝히기 위한 불꽃’, ‘폭탄’, ‘이라는 어둠을 만들어내기 위해 쓰인다는 모순이 세상을 더 어둡게 만드는 것임을, 말줄임표로 보여주었듯이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안타까움이라니! 세계의 시간에서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는 인간이 의 발견이라는 위대한 역사를 불꽃으로 잘못 써서 세계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대단하다

종이를 지폐로 만들어

그 종이 쪼가리도 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 지폐 즉 그 종이 쪼가리에

의존하면서 사는 인간들이

과연 대단할까?

 

연찬흠(3-2), <인간과 종이>

 

그런 연장선에서 찬흠이 시를 읽으면 또 다른 공감을 하게 된다. 종이는 만큼이나 위대한 발견이자 문명의 출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종이로 을 만들어내었고 귀한 대접을 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귀하게 만든 자본의 노예로 살게 만들었다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이자 종이 쪼가리에 의존하면서 사는 인간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 철학의 시작임을 찬흠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행복과 자유를 추구하고 사는 것일까?

 

살면서 한 번쯤은

지치고 피곤했을 것이다

 

그러한 삶에 하나 정도의

낙은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는 눈을, 다른 누군가는 코를,

또 다른 누군가는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이 낙이 된다.

 

이러한 낙이 삶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과연 어떻게 될까?

 

낙이 사라진다면 매일매일이

힘들고 지칠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쯤은 자신의 낙을

만들어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당신의 행복한 삶이

불행한 삶이 되지 않게

 

매일 행복하기를 바란다

 

권오혁(3-2), <인생의 낙>

 

오혁이는 진억이의 시가 너무 진지하다고 느껴서일까 자신만의 해법을 만들어냈다. 행복의 비결은 단순한 을 발견하고 누리는 것이라고. 온갖 것들로부터 지치고 힘든데, 눈과 코와 입을 즐겁게 하는 것부터 행복이 시작하는 것이지 않느냐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자신만의 낙이 담고 있는 숙제이자 화두 같은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한없이 가벼울 수 있고, 진중할 수 있는 이다.

 

당신의 하루는 어떠한가

어떠한 장소에서

어떠한 감정으로

어떠한 사람과 함께

당신의 하루를 보내는가

 

매일 찾아오는

당신의 하루를

헛되이 보내진 않는가

 

당신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하루를 보내는 것은 어떠한가

 

당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매일을 보내라

 

김태완(3-2), <당신의 하루는 어떠한가>

 

그런 점에서 태완이도 비슷한 시를 썼다. ‘이 쉽지 않듯 당신의 하루는 어떠한가라고 묻는 하루가 그렇다. 멀찍이 비켜서서 속 편하게 묻는 말처럼 보이기 때문에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좋은생각같은 잡지에서 본 듯한 말이어서 아쉽지만 이 또한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다지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일주일 중 황금 같은 주말

이날에는 쉬고 싶다

게임 하면서 놀고

밖에서도 놀고 싶다

주말은 온종일 놀고 싶은 날이다

 

남도영(3-2), <주말>

 

도영이의 <주말>은 그냥 쉬어가는 시라 해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한 주일을 보내는 어른의 마음도 그러니까 말이다.

 

앉은 거

누운 거

 

난 누운 것이 제일 좋다

누운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난 편한 것이 제일 좋다

편한 것이 좋기 때문이다

 

 

김규빈(3-2), <선거>

 

끝으로 규빈이의 시로 웃어본다. 마침 첫날에 학생회장 선거가 있어서 후보들이 소견 발표하러 왔던 일로 쓴 것인데, 처음에는 자신이 학생회장을 넘어 학교를 산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밝히는 시였다. 그런데 학교를 사유화하고 독재하듯 마음대로 한다는 내용이어서 몇 마디 거들었더니 아주 재미있는 시로 퉁치듯 썼다. 규빈이만의 유머라고 생각하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시로 자신의 뜻을 펼친다는 것이 선거에 나온 것만큼이나 어렵고 감당해야 할 것이 많은 것임을 안 것만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시를 쓰고 고치고 다듬어서 나누어 읽는 것이 허락되었기에 가능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 시간만큼은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기에 두 반에서 나온 시 이야기를 하며 처럼 빛나는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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