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6일과 17일, 충주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권태응어린이시인학교에 맨발 모둠 교사로 참여하였다.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모인 아이들과 이틀 동안 시 이야기하고 시 쓰고 발표하는 시간에 나온 모둠 아이들 시를 올린다.
하찮은 학원
이종수
안양에서 온 1학년
문서호는
영어학원을 두 개나 다닌단다
하나는 하찮은 학원
유치원 다닐 때 배운
영어 단어를 배우기 때문에
보잘 것 없는 학원이란다.
기가 막혀!
하찮은 학원이라면
안 다니면 될 텐데
그건 엄마 마음이라서
하찮은 학원에 계속 다녀야 한단다.
참 하찮은 고민이다.
예지몽
김호수(서울 발산초 5)
악몽이 시작되었다
내 눈에 있는 것은
현실이다
가끔은 좋다
예지몽은
양날의 검이다
송골매
김호수(서울 발산초 5)
너는 어쩜 빠르니
우리나라에서
다이빙을 하네
시속 390Km/h
다이빙 속도가
사람보다 빠르니
부럽구나.
힘 빠진 시
하성훈(강원 평창초 5)
선생님은 시를 쓸 때
힘을 빼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글씨를
힘 빼서 쓰고 있다.
옆에 친구랑 동생은
힘 빼서 잘하고 있는데
나는 힘이 잘 안 빠진다.
단풍
하성훈(강원 평창초 5)
단풍아, 옆에 있는 네 친구는
잎을 떨어뜨리려고 준비하는데
왜 너는 아직 빨갛니?
다른 친구 잎을 떨어뜨릴 때
왜 너는 계속해서 빨갛니?
다른 사람 보기 좋으려 그래도
너도 준비를 해야지
시멘트 바닥의 스타 장미
유병헌(충주 탄금초 4)
곤충들과 꽃이 있는 시멘트 바닥에 뿌셔진 곳
사람들은 쳐다보지 않는다
장미가 피어나는 순간
사람들은 하나둘씩 장미를 본다
장미는 사람들에게 부끄럽다고 몸을 숨긴다.
그냥
유병헌(충주 탄금초 4)
어느날 그냥이 말했어
“왜 사람들이 나만 쓰는지 모르겠어.”
다른 글자들이 말했어
“왠지 알아?”
“왜?”
“제일 간단하고 편하기 때문이야.”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은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지 않아.”
그냥이 말했다.
“그런데 왜 많이 말해?”
“몰라.”
폭죽놀이
표시윤(충주 남산초 3)
과일들은 폭죽놀이를 한다.
귤은 팡팡팡
포도는 팡앙아앙
파인애플은 푸슉 팡
입속에서 달콤한 폭죽놀이다.
단풍 짝꿍
표시윤(충주 남산초 3)
단풍을 처음 본 날
단풍 나들이 간 날
단풍을 처음 봤다.
너무 신나서 뛰어다녔다.
새빨간 단풍나무 앞에 멈췄다.
단풍잎을 톡톡 5개 땄다.
다섯 손가락만큼 땄다.
단풍잎이 부끄러워서 빨개진 줄 알았다.
아빠는 내 생각을 믿어주었다.
나는 그게 아직도 너무 재미있었다.
하찮은 학원
문서호(경기 안양 덕현초 1)
나는 영어학원
두 개를 다닌다.
그 두 학원은 하찮은 학원이다.
한 학원은 문장을 안 배우고
한 학원은 뭐,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단풍
문서호(경기 안양 덕현초 1)
붉게 물든
단풍의
비가 내리면
아이 시원해!
단풍의
눈이 내리면
아이 차가워!
여러 가지
단풍잎들
맨발 모둠 이야기
힘을 빼자, 시를 쓰자
이종수(모둠 교사)
“성훈아, 아주 잘 썼는데, 좀 힘을 빼면 어떨까?”
평창에서 온 성훈이가 친구들과 과자를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로 시를 썼는데, 아무래도 그냥 맛있었다는 투로 써서 힘을 빼고 그때 느낌을 잘 살려보라고 한 말이다.
그런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연필을 너무 꾹꾹 눌러서 쓰라는 줄 알았다고 대답한다.
“그러니까 힘을 빼라는 건, 연필을 가볍게 쥐고 손가락 안 아프게 쓰라는 게 아니고, 생각 먼저 나가서 머릿속에 들어있는 표현을 그냥 쓰지 말라는 말이지.”
말해놓고도 어려운 말을 꺼냈다 싶었다.
그런데 대표시로 시화를 만들 때 다시 쓸 줄이야!
성훈이 시에 보면 다른 친구들은 다들 힘을 빼고 쓰고 있었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까? 이런 질문을 주고받으며 맨발 모둠 친구들과 이틀을 꼬박 시를 썼다. 병헌이는 내 말 가운데서 ‘그냥’을 받아 써서 몇 번이나 고쳤고, 서호는 똑똑하고 말 잘하는 모습 형과 누나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여기서 잠깐, 서호가 쓴 ‘하찮은 학원’은 공부까지 잘하는 서호에게 너무 쉬운 걸 배우게 하는 학원이어서 그런 말을 쓴 것인데, 난 학원 여러 개 다니느라 힘든 아이에게 숨통을 틔워주려고 ‘하찮은 학원’에 ‘하찮은 고민’이라고 써서 서호 어머님에게 걱정을 끼쳐드린 것 같아 죄송스럽다.
시윤이가 대표시로 쓴 ‘폭죽놀이’ 말고 ‘단풍’에서 아빠가 자기 말을 믿어주어 좋아다는 것만큼 서호 어머니를 믿어주었어야 하는데, 낼름 시로 써버린 경솔함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사춘기라면서 사춘기가 아니었던 호수가 중간중간 리코더로 멋진 여주를 하면서 했던 말, “얘들아, 1학년한테 너무 많은 걸 가르치지 말아라.”(이 비슷한 말이었던 것 같다)했던 것이 화살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그래도 맨발 모둠 친구들은 서로를 잘 보듬어주며 ‘하찮은 선생님’보다 훌륭하게 이틀을 시를 쓰고 이야기를 나누며 발표까지 멋지게 해주어, 진짜 ‘맨발 동무’가 되어주었다. 호수는 ‘예지몽’에 이어 ‘자각몽’, ‘악몽’, ‘죽음’이란 시를 쓸 만큼 진지하게 꿈의 분석을 해보자고 할 만큼 이야기가 통했고, 보이게 하지 않고도 의젓하게 동생들을 이끌어주었고, 성훈이는 동생과 친구들에게 양보하면서, 병헌이는 이안 시인이 사는 동네에 사는 걸 자랑스러워하며, 시인 선생님들이 낸 동시집에 사인을 받고 시 낭독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여 시 쓰는 분위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리고 시윤이는 서호를 밀착 마크하면서 성훈이와 호수와 연결하여 주었고, 그 덕분에서인지 서호는 시인 선생님들이 시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하는 질문에 손을 들지 않는 때가 없을 만큼 열심히 시인학교 분위기를 빛내주었다.
그러고 보니 난 한 게 별로 없다. 아, 모두를 이름이 들어가는 시, 열 편을 썼으나 ‘보잘것없는’ 어른 시에 지나지 않아 시화를 만들어놓고도 부끄러워 단풍잎으로 물들였을 뿐이다. 조금이라도 한 게 있다면 아이들의 시를 모아 다른 자리에서 자랑스럽게 보기 시로 말해주면서 ‘시를 쓰자, 시인이 되자’고 시인학교 정신을 퍼뜨리는 일밖에 없는 것 같다.
*전체 모둠 이야기와 시는 2024년 권태응어린이시인학교 시집으로 곧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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